석 달 동안 A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A는 내 집에 찾아왔다. 난 죽어있는 듯 숨어있겠다고 다짐했고, 문이 부서져라 두드리는 A에게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A뿐 아니라 가스 검침원이 왔을 때도, 주인아줌마가 왔을 때도, 취한 옆집 아저씨가 왔을 때도, 경찰 아저씨가 왔을 때도 대답하지 않았다. 내 무반응에 화가 났는지, 그치지 않는 비에 화가 났는지 네번째 방문 때 A는 애꿎은 우유 투입구를 부쉈다. 그 사이로 물에 젖은 십만원을 넣어두고 갔다. 그리고 다신 우리집에 오지 않았다. A가 돌아간 뒤 빗물이 세어 들어오는 우유 투입구를 두루마리 화장지로 쑤셔 막았다. 오랫 동안 밥을 먹지 않아 방에 누워있는데, 물이 가득 차 등에 욕창이라도 생기면 정말 희망이 없었기 때문이다. 욕창은 아스피린이나 타이레놀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걸로 해결될 수 없다면 방법은 없는 거다. 죽은 듯 처박혀 있었지만 죽긴 싫었다.

석 달 동안 장판을 뜯어먹었다. 주인아줌마가 선심 쓰듯 깔아 준 노란 장판은 구워먹으면 별미였지만 석 달 전 우리집 가스는 끊겼다. 며칠 뒤 전기도 끊겼다.

석 달 전. 난 한 페밀리레스토랑에서 일했다. 그곳은 통조림에 든 음식 재료를 사는 것 보다 간판의 꺼진 형광등을 바꾸는 데 더 많은 돈을 쓰는 곳이었다. 난 가끔 통조림에 붙어있는 스티커를 뜯어 먹곤 했다. 많은 종류의 통조림 스티커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 유통기한이 50일 지난 아스파라거스 통조림의 스티커가 가장 맛있었다. 진실만을 말하건대, 그 통조림 스티커는 금방 익힌 아삭 아삭 아스파라거스보다 훨씬 맛있었다. 비가 내리기 바로 전 날은 점장이 내게 약속했던 정직원 승진 날이었다. 정직원이 되면 내가 받던 월급보다 십오 만 원 정도 더 받게 된다. 아침부터 기쁨에 가득 찬 난 2년 5개월 동안 모은 12만원으로 산 디올옴므st 정장을 입고 출근했다. 점장 사무실 문을 열었다. 점장은 몰래 빼돌린 후르츠칵테일 통조림을 먹으며 오스람 형광등 카탈로그를 읽고 있었다. 점장은 직원들에게 후르츠칵테일 통조림을 빼돌리면 통조림 따개를 휘두르며 '대가리 뚜껑을 열어 삔다.'고 협박하곤 했다. 우린 두려움에 떨며 후르츠칵테일이 사라지지 않도록 냉장고에 따로 보관하기로 했다. 이 가게에선 머리가 열려도 산재혜택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한번은 어린 알바생이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양송이 통조림을 따지도 않고 뱃속에 쑤셔 넣은 적이 있다. 우린 그에게 까스활명수를 먹여 응급 처치했다. 하지만 이 도시에 어울리지 않게 순박했던 그는 음식을 훔쳐 먹었다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통조림 따개로 자기 머리를 열어삣다. 오공본드로 대가리 뚜껑을 붙인 그는 아직도 이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다.

우리 중 보험에 가입한 사람은 노망기가 있는 요리사 아저씨 밖에 없었다. 심지어 AIG생명보험이었다. 한번은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아들이 내 이름으로 보험을 들어부렀다고 걱정한 적이 있다. 아저씨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거니까 AIG에서 돈도 못 줄 거예요. 그는 나의 위로를 듣고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점장이 형광등 카탈로그를 다음 장으로 넘기는 순간 그를 불렀다. 난 그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어나서 한마디도 하지 않고 오다보니 목소리가 갈라졌다. 점장 역시 갈라진 목소리로 가가 일 안 하끼가? 라며 모른 척 했다. 난 대가리 뚜껑이 열릴까봐 두려웠지만 그래도 말했다. 내가 '정직원'의 지읒을 발음하자마자 그는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역시 갈라진 목소리로.

그 다음 일은 간단히 설명해야겠다. 난 아직도 그 충격적인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난 조용히 가게 청소를 시작했다, 하이타이 냄새가 나는 촌스러운 알바생 유니폼을 입고 요리사와 캐셔가 오길 기다렸다. 30분후 그들이 도착하고 유니폼을 입고 조리실의 불을 올리는 순간. 역시 난 그 순간만을 기다렸다, 음침하게도. 물이 떨어지는 마대 자루와 물이 출렁이는 물통을 들고 테이블에 앉았다. 여기요! 커다란 목소리로 알바생을 부르고 신들린 듯 가게의 모든 메뉴를 읊었다. 모두 일흔 두 개의 메뉴였는데 그 중 서른 개는 네 명에서 다섯 명이 먹는 음식이었다. 다섯 시간이 지난 후 테이블에는 마지막에 먹은 Italian Cheonjue Mixed Rissoto blended (Canned)Fat Liver(이탈리아식 전주비빔밥에 (통조림) 지방간 혹은 푸아그라를 첨가한 것)의 텅 빈 접시와 구토물이 담긴 20개의 양동이와 DKNY 비딜리셔스를 온몸에 적시고 소니 사이버샷 DSC-T2로 날 찍는 뚱뚱한 여자와 날 개 쳐다보듯 하는 알바생과 역시 그런 눈으로 날 보는 점장이 있었다. 오른쪽에 한 뼘 정도 달아난 내 영혼이 있었다. 모든 메뉴는 칠십이만 육천사백사십 원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난 이미 점장의 멱살을 잡고 받아낸 밀린 2달 분 임금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 이후의 기억은 응급실로 건너뛴다. 날 데리러온 A는 삼성의 입사시험 최종합격통지서와 계속 토하는 날 위해 가져온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입원실 옆에 있었다. 의사는 이상한 언어로 진지하게 씨부렁거렸다. 입원비가 없는 난 다음날 포도당 링거를 맞다 쫓겨났고(산재가 안 되더라)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공사현장을 지나쳤다. 서울고시텔을 짓고 있었는데 서울고시텔은 내가 예전에 살았던 고시원 이름과 같았다. 그 고시원에서 6년 동안 살았던 때가 있다. 6년 동안 세 번 방값이 올랐고, 두 번 방이 좁아졌고, 네 명의 옆집 사람이 자살했다. 첫 번째 자살한 옆집 사람은 비쩍 마른 녀석이었다. 그 녀석은 얼핏 봐도 XS의 옷이 몸에 헛돌 정도로 마른 녀석이었다. 녀석은 꽤 많은 남녀와 밤을 지새우느라 방에 들어오지 않았고 가끔 자기 방에 데려와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그때마다 난 조용히 벽을 두드리며 그들의 흥분을 환기시키곤 했다. 그들의 사랑이든 육체든 간에 난 시끄러우면 잠을 잘 수가 없었고, 그러면 알바하러 나가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 방과 녀석의 방을 나누는 벽은 연필 길이보다 더 얇았다. 내가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건 그녀의 자살 소식을 듣기 몇 시간 전이었다. 그녀는 죽기 전날 일본/베트남/필리핀/중국/러시아 야동을 보며 밤을 새웠다. 다음 날 아침 고시원 주인은 투덜거리며 그 방의 짐을 모조리 뺐다. 누구도 그의 짐을 찾으러 오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두 번째 사람은 남자였는데, 그는 안 좋은 냄새를 여기저기 듬뿍 풍기고 다니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아주 조용히 생활했고, 아주 조용히 죽었다. 그의 소식을 듣게 된 건, 몇 주 후 한 나름 엄선한 향수를 겨드랑이에 뿌리는 논술교사가 그 방에서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였다. 그때 쯤 고시원이 리모델링을 했다. 난 한동안 A의 집에서 신세지게 되었다. 다시 돌아간 고시원은 좀 더 좁아졌고, 벽은 더 얇아졌고, 방세는 좀 더 올랐다. 방이 좁아진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쳐도 방세가 오른 건 참을 수 없었다. 난 집주인에게 따졌다. 집주인은 아주 평이한 표정으로 가스비가 올랐다고 했다. 난 아주 조용히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몇 달 뒤 옆방의 논술교사가 고시원에 불을 질렀다. 논술교사는 벽을 뚫고 들어와 조용히 궁상떨고 있는 나를 밖으로 내보냈다. 여기저기 쓰레기가 많아 대청소를 해야겠단다. 고작 청소 따위에 심각한 표정을 짓는 그를 비웃으며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에는 내가 찾던 담배가 없었고, 별거 아니면서 잰 채하는 국산담배를 사들고 돌아온 나는 차마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불구경하다 보험금을 받고 여기 집을 얻었다.

석 달 동안 비가 내렸다. 긴 장마 동안 넣어둔 양말 다섯 켤레와 팬티 두 벌, 티셔츠 여섯 벌은 파랗고 푹신푹신한 곰팡이로 덮였다.

석 달 뒤. 토 나올 정도로 내리던 장마는 멈췄다. 하지만 하수구마다 퉁퉁 분 사람이나(공교롭게도 주인아줌마도 포함되었더라) 개. 가끔 이구아나가 처박혀 있어 물이 빠지지 않았다. 창문 밖으로 넘실대는 빗물에 파란 곰팡이가 핀 옷들을 빨았다. 곰팡이가 핀 티셔츠는 니트 셔츠처럼 따뜻해보였지만 차마 입을 순 없었다. 빨래타이는 내 옷을 하얗게 만들어 주었다. 거품과 함께 창문 밖 넘실대는 물을 파랗게 만들어 주었다. 창문 밖 조용히 한 사람이 떠다녔다. 난 그를 빗자루로 잡아주고 인사했다. 그는 물에 오랫동안 잠겨있던 익사체처럼 얼굴도 팔도 손가락도 퉁퉁 부어올랐는데, 성기도 없고 가슴도 없어 마네킹인 줄 알았다. 그가 말하길 보여주기는 부끄럽지만 자기한테도 성기가 있다고 한다. 그녀는 여자였고, 성기가 없는 게 아니었다. 난 이 나이를 처먹고도 봉긋한 가슴이나 높은 목소리로 여자를 구별했던 것이다. 그 여자는 내게 안부를 물어보았다. 붙임성 있는 사람이었다. 난 되는대로 내 안부를 지껄이고 그 여자에게 물어보았다. 요즘 어떻게 지내요? 그 여자는 아무 말 없이 물속에 잠겼다. 파란 물위에는 빨래타이가 내뿜는 기포만 가득했다. 그녀는 익사체였다.

빨래를 끝내고 창문을 닫으려는 순간 비둘기가 날아왔다. 비둘기의 발에는 모나미 볼펜이 묶여있었다. 비둘기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내게 종이를 달라고 말했다. 난 여전히 어이없는 표정으로 종이를 가져다주었다. 비둘기는 아주 능숙한 필기체로 글을 써내려갔는데, 내용은 이러하다.

<비둘기가 쓴 편지>
뭐하셈 석 달 동안 방구석에쳐박혀있다니씨방새
난 안보고 싶었니. 나도 보고 싶었어.
비도 그쳤으니까 밖으로 나와
돈도 없을 텐데 그냥 알아서 와
방주로와
기다릴게
to A가 씀

편지를 다 쓴 비둘기는 모나미 볼펜을 내팽개치고 날아갔다. 난 그제야 저 비둘기가 어떤 비둘기인지 알게 되었다. 그냥 비둘기였던 것이다. 그냥 비둘기는 어쩌다보니 A를 지나치게 되었고 A의 간곡한 사연을 듣고 감동한 나머지 A의 말을 전하러 내게 온 것이다.

되는대로 지껄이던 A와 나는 언제부턴가 우리만의 모종의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아주 새로운 언어라기보다는 한글로 쓸 수 있지만 어쨌든 우리만의 언어였다. 우린 언제부터 만났는지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가 언제까지 만날 수 있는지도 말하지 않았다. 우리 언어로는 저런 말들을 할 수 없었다. 언젠가 A는 토익 문제집과 맨투맨을 들고 나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 내게 토익 시험 준비를 같이 하자고 말했다. 난 천천히 그의 두꺼운 교재를 들어 올렸는데, 지져쓰. 내가 22년간 읽었던 책 보다 더 두꺼웠고, 그걸 모두 합해도 이 책보다 더 글자가 많을 순 없었다. 게다가 난 Fuck Ass Hole이나 Shit이 없는 영어 문장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난 A에게 네가 건네준 토익 시험은 아마도 영어시험이 아닐 거라고 말했다. A는 어벙하긴 하지만 속은 치밀한 녀석이어서 그런 실수는 잘 하지 않는다. 하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 A는 내 충격에 아랑곳하지 않고 책을 덥석 집어 들며 구백점이면 삼성에 입사할 수 있다는 말을 했다. A는 삼성에 입사해서 매일 버거킹 와퍼세트를 먹는 꿈을 꾸고 있었다. 나 역시 그러고 싶었지만, 페밀리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신세였고 A만큼은 매일 버거킹에서 와퍼를 먹었으면 좋겠다고 축복했다. 차마 아무도 쓰지 않는 언어를 위해 내 인생을 바칠 순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인생은 진절머리 나게 소중한 것이었다. 삼성은 이상한 곳이었다. 토익은 분명히 영어시험이 아니었다. A는 그 년도 삼성입사에 실패했다. 그가 알고 있었던 삼성에 입사하기 위한 토익점수 최하점은 900점이었다. A는 그것만 믿고 토익시험에서 900점만 맞췄다. 하지만 그 년도 삼성입사 자격은 토익 910점이었다. 난 자상하게도 A에게 이번엔 960점을 맞추라고 했고, 다음 해 A는 960점의 토익성적표를 삼성에 제출했다.

내 목 언저리까지 차오른 빗물 속에도 버스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지하철은 승객들의 감전 위험이 있어 움직이지 않은 지 오래된 걸로 알고 있고, 비행기는 생각도 안 해봤고, 택시 역시 생각도 안 해봤다. 물속에서도 버스는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내 앞으로 물살을 헤치고 버스가 멈춰 섰다. 난 아주 놀랐고 반가웠지만 내겐 버스비가 없었다. 하지만 난 왜인지 모르게 A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고 처음 만난 버스아저씨에게 사정했다. 아저씨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통에 라디오를 품고 있던 사람처럼 버스의 라디오 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이번 장마는 서울 지역에만 내렸다고 한다. 서울 외의 지역은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아 가뭄이 발생했단다. 심각한 물 부족으로 서울 시장은 선심 쓰듯 수도권의 전문대생을 고용해 서울을 둘러싸는 방벽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물을 저장해 서울 외 지역에 나눠 준단다. 이어 아나운서는 다른 뉴스를 읊었다. 이번엔 물에 잠긴 서울 대공원 소식이었다. 서울 대공원도 홍수를 피해가지 못했다. 때문에 서울 대공원 동물원의 짐승들은 다 죽었고, 기린과 티라노사우루스 밖에 안 남았다고 한다. 전문가는 기린과 티라노사우루스 중 티라노사우루스가 압도적으로 더 비쌌기 때문에 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희귀종이라는 이유로 기린보다 티라노사우루스를 먼저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나운서는 이어 말했다. 시청 앞 잔디광장에는 커다란 건축물이 세워졌다. 딱히 이름이 있었던 건 아닌 것 같고, 있더라도 기억할 만큼 중요한 것 같지도 않다. 아나운서는 그걸 '방주'라고 불렀다. A가 말했던 방주는 아마 그 '방주'일 것 같다. 비가 내리기 시작할 때쯤 방주 근처에 많은 청년들이 모였다고 한다. 청년들은 한때 창녀였고, 소년이었고, 소녀였고, 군인이었고, 사이보그였다. 청년들은 거기 죽치고 앉아 술 마시거나 책 읽거나 파티를 하거나 난교를 하거나 울거나 감기 걸리거나 산책을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노래를 하거나 밥을 먹었다. 그러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물이 들어차는 와중에도 청년들은 방주가 있는 잔디광장에서 저런 일들을 했다. 그러다 다 죽은 것이다. 한 할아버지는 인터뷰에서 저들에 대해 죽어도 싸다는(말은 절대로 하지 않았지만)듯 침착하게 말했다. 지금도 시청 앞 잔디광장에는 수백 구의 익사체가 둥둥 떠다닌다고 한다. 아나운서는 그 익사체를 치우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이 들 것이며 커다란 납골당에 쑤셔놓고 태워버릴거라고 한다. 아나운서는 또 다른 소식을 늘어놓았다. 63빌딩 근처에서 버스 광고가 흘러나왔는데, 수영장 광고였다. 목소리가 예쁜 여자는 하늘하늘한 웃음을 날리며 자긴 63빌딩 옥상에서 수영을 할 거란다. 미친년이었다. 내릴 사람이 없어 버스는 정류장을 지나쳐가고 뉴스는 계속되었다. 코엑스 아쿠아리움의 물고기들이 모두 탈출했다는 소식에 이어 63빌딩에서 상어가 탈출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버스 옆으로 상어가 스쳐지나갔다.

반포대교를 지나가는 버스 아래도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버스는 멈추고 말았다. 아저씨는 말없이 내려 버스를 앞으로 밀기 시작했다. 한참이 지났지만 버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도 조용히 내려 아저씨 옆에서 버스를 밀었다. 역시 버스는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는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는 버스 뒤에서 쌩쑈를 했다. 그러다 아저씨는 내게 먼저 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난 반포대교에서 시청 광장으로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이 재난 속에서 혼자 움직일 수도 없었다. 하지만 아저씨는 막무가내였다. 이번엔 나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짓으로 이쪽을 향해 쭉 가면 시청역이 나올 거라고 말했다. 난 어쩔 수 없이 아저씨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그가 손짓한 이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먼 거리였지만, 생각보다 위험하진 않았다. 난 반포대교를 통과할 때 노상방뇨를 했고, 자유형을 하다 배영을 하며 시청광장을 향해 갔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행이었다.

버터플라이를 하며 도착한 시청 앞 광장에는 예상대로 익사체들이 떠 있었다. 그들은 죽기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떠다니며 술 마시거나 책 읽거나 파티를 하거나 난교하거나 울거나 감기 걸리거나 산책을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노래를 하거나 밥을 먹고 있었다. A는 방주의 문을 열고 시체들을 헤치며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A는 고무튜브를 허리에 끼우고 있었다. A는 내게 잘 지내느냐고 물었다. 충격이었다. 그녀가 내게 한국말로 안부를 물은 것이다. 슬펐다. 그러면서 마음이 놓였다. 난 그녀에게 되는대로 한국말로 나의 안부를 지껄였다. A는 묻지도 않았지만 알아서 자기 안부를 말했다. 자긴 삼성에서 잘 지낸다고, 매일 버거킹 와퍼세트를 Large로 먹는다고, 매일 원두커피를 마신다고. 난 그냥 A가 말하는 걸 듣고 있었다. A는 계속 자기 안부를 말했고, 난 그냥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청 앞 익사체의 군중에서 콘돔 하나가 떠다녔다. 난 그 콘돔을 주웠다. A와 나는 한때 생활고에 시달릴 정도로 콘돔을 많이 샀다. A는 내게 원망스러운 목소리로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난 대답했다.

그때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A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A는 내게 작별인사를 하며 십만원을 주었다. 그때 난 돈이 한 푼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조용히 돈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A와 난 헤어졌다.

A는 튜브를 타고 방주로 들어갔다. 방주의 문이 닫히고 큰 소리를 내며 방주가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커다란 해일이 일어 익사체들을 덮쳤다. 난 끝까지 서서 익사체들과 떠오르는 방주를 바라보았다. 하늘엔 해가 떠 있었다.

목수들과 웨이트리스들과 마약중독자와 비서들과 알콜 중독자들과 신경쇠약자들과 소년들에게 키스하는 소년들과 소녀들에게 키스하는 소녀들과 소년들에게 키스하는 소녀들과 그 사이의 모든 청년 시체들은 서로의 몸을 끌어안고 섹스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각자 맘에 드는 속도로, 체위로, 목소리로, 이게 마지막이라는 듯 열심히 서로를 끌어안았다. 어느 순간 그들은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다른 목소리로, 높낮이로, 빠르기로, 박자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난 저들을 하나하나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누군가와는 눈이 마주쳤고 누군가와는 스쳐지나갔고 누군가는 내가 언젠가 본 사람이었고 누군가는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갑자기 코끝이 찡해졌다. 석 달 만에 본 햇빛이 내 볼을 태울 듯 밝았다. 난 조용히 손가락으로 코를 쥐고 잔디가 밟히는 바닥으로 몸을 담궜다. 그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면, 다들 하나같이 콘돔을 끼고 있었다는 것이다. 난 코를 틀어쥐고 주머니 속 콘돔을 찾아보았다. 콘돔은 여전히 있었다. 그들에게 콘돔은 성기에도 있었고, 손가락에도 있었다. 물속에서도 노래는 들렸다. 그들은 어느 순간 입을 맞춰 말했다. 놀랄 것 없다고.

내가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 때, 그들은 각자의 성기에서 콘돔을 빼내어 목까지 차오른 물에 깨끗이 씻고 있었다. 그리고 콘돔에 바람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바람이 가득 찬 색색깔의 콘돔은 하늘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서울 하늘에 콘돔 풍선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방주는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잔디광장에서 분수가 솟구쳐 나오고, 시청 앞 광장에는 물결이 일었다. 청년 익사체들은 물결에 맞춰 흩어졌다. 난 다시 침과 정액과 머리카락이 떠다니는 물 아래로 몸을 담궜다. 석 달 만에 본 햇빛이 내 볼을 태울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