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마당 - 단편 게시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소주를 한 잔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술잔을 집었던 손가락에 끼워둔 담배 한 모금으로 안주를 했다. 연기에 붙어 입김도 함께 흘러나온다. 아침의 산처럼 아름다운 도시의 밤은 강에 비쳐 빛으로 흐른다. 한겨울, 어제 내린 눈이 걷힌 강변은 가장 먼저 엄청난 추위로 날 맞았다. 이 빌어먹을 겨울은 왜 이렇게 추운 건지.
“쓰읍. 제기랄!”
비쩍 마른 내 몸에 붙어있는 약간의 지방은 지방으로써의 가치를 못한다. 겨울양복에 껴입은 외투도 추위를 막기엔 부족했다. 오늘 회사에 사표를 두고 나오는 굉장한 일을 했는데도, 멋대가리 하나 없다. 애인과 헤어지거나 고독에 몸부림치며 한강을 찾는 사람들이 TV에 비춰질 땐 그렇게도 멋있더니. 망상은 망상, 현실은 현실. 버러지 같은 깨달음에 찬바람이 사무쳤다. 그래서 한겨울의 한강은 서로 바라만 보아도 따뜻한 커플마저도 외면하고 떠나는구나.
나도 그만 가야겠기에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급작스럽게 술이 올라와 눈이 풀리고 다리가 헐거워졌다. 그래, 제기랄, 소주 안주로 담배를 고르는 건 집에서나 부릴 깡이지. 강변의 길이 구불구불해서 내 걸음도 오락가락한다. 그럼 가만히 서보자. 이런! 이제는 구불거리는 건지 곧은 건지도 모르겠다. 어째서 바닥과 강은 내게 가까워지는 거지? 강이 내게 다가오는 건가, 내가 강으로 빠지고 있는 건가?
염병.
몸이 아래로 떨어져, 코에 닿던 공기가 물로 바뀌고 가슴이 급격히 뛰었다. 손발을 휘저어도 손에 잡히는 것 없이 몸이 가라앉았다. 내일 신문 귀퉁이에서도 아주 조그만 정도의 가치로 내 생이 끝나간다. 우습군. 우습다? 내가 최근에 신나게 웃어본 일이 있던가? 가장 최근에 했던, 내 감정에 가장 충실했던 일은 뭐였지?
그 사표.
‘부장님전상서. 그간 부장님께서 못마땅하고 못미더우시며 탐탁치 아니하게 여기시는 저에 대한 큰 관심을 핀잔과 질책과 때때론 언어적 폭력으로 화하여 일삼으심에 더 없는 감동을 느껴 보답을 드리고자 부장님의 용변 냄새까지도 끈질기게 주시한 결과물로써, 한 장의 사진을 동봉합니다.
잘 보셨습니까? 분명 지금 제 얼굴을 떠올리며 편지에 대고 “개새끼” 라고 욕하셨을 부장님의 표정이 눈에 선합니다. 예, 보셨다시피 사진은 사모님의 깊디깊은 애정이 주는 안주에 잠시 염증을 느낀 부장님께서 사랑의 여러 표현 중 확장재생산이라는 방법을 통해 해소하실 때의 환희를 포착한 작품이지요. 다른 말로는 바람, 간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그래서 제가 그 일련의 행실에서 비롯된 잘못을 지적하느냐? 아니지요. 단지 그것은 저에게 하나의 계기가 되었고, 저는 부장님께서 깊은 아량에서 하사하신 감사한 성은을 결단코 쉬이 넘기지는 않는 부하직원입니다. 간통이라는 것은 죄가 성립되는 사랑이니까요.
그래서 이것을 빌미로 뭘 할 것이냐? 자, 이게 정말 중요한 겁니다. 저는 이 사진 한 장으로 부장님의 통장을 갉아먹는 파렴치한 쥐새끼는 아닙니다. 이 편지는 봉투에서 보셨듯이 사표이고, 저는 그 단어에서 유추되는 행위를 적당히 피력하기 위해 편지를 썼습니다. 다만 부장님께서 제게 주셨던 모멸감, 자괴심, 분노, 열등감, 살의를 그대로 둘 수가 없기에 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이 말들이 다 이해는 되냐, 새끼야? 내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더라도 니가 하는 꼴은 끝까지 지켜볼 테니까 알아둬. 내 봉급에서 10원이라도 뺄 생각 말고 똑똑히 부쳐라. 자회사나 인맥이 있는 회사에 입김 불어서 내 취직 막을 생각도 말아. 그리고 제발 부탁인데 사진 한 장에 바들바들 떨다가 술이나 처마시고 한강에 빠져 허우적대다 죽어버려라, 시궁창에서 똥이 떨어지기나 바라는 돼지새끼.’
염병할.
눈을 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시야가 훤했다. 몸이 젖어서 얼어버릴 듯이 추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따뜻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해가 내려다보는 회색의 평야에는 가까이서 보면 대번에 질겁할 만한 생김새의 초롱아귀, 리자드 피쉬 등의 심해어들이 걸어 다니고, 토끼가 별주부를 등에 업은 채 헤엄치고 날치가 날아다녔다. 이것들이 갑작스럽게 나타나 심지어는 당연한 일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작은 물고기 떼에 앉아 요염하게 다리를 꼰 채 턱을 괸 젖소 한 마리와 눈이 마주친 순간, 이 모든 것들이 말도 안 된다는 생각과 더불어 감정적인 혼란으로 변모했다. 나는 아래턱을 중력에 맡겨두고 젖소를 보았다.
“뭐가 그리 신기하여 입을 딱 벌리고 있느냐?”
젖소는 중후한 목소리로 물었지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성대를 비롯한 전신의 내 세포들은 이미 넋이 나가 있었다. 젖소를 지탱하느라 힘겨워 보이는 물고기 떼가 합창했다.
“용왕님 앞에서 무례하다!” “무례하다!” “무례하다!”
근엄하게 꾸짖은 물고기 떼의 목소리는 오히려 높은음이어서 질타인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래서 질타가 주는 반성 강요적인 분위기에 눌리지 않은 나는 그들이 당연하게 말한 그것을 지적할 수 있었다.
“저 젖소가 용왕이라고?”
모든 물고기와 동물이 헛바람을 삼키며 나를 보았다. 검은 눈 오징어가 놀라 먹물을 쪽 뽑아내자 당황한 별주부는 똥을 싸질렀다.
“그렇다네. 짐이 바로 용왕일세.”
비록 전설에서 들은 것처럼, 양옆에서 제 몸보다 커다란 부채를 부치는 하녀라거나 도열한 물고기 신하들은 없었지만, 평지를 활보하는 물고기, 동물과는 다르게 특별한 존재라는 걸 알리듯 물고기 떼 위에 앉아 다리를 꼬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저 젖소는 틀림없이 미친 게 확실한 젖소다.
“스스로 밝힌다고 젖소가 용왕이라는 걸 넙죽 받아들일 수는 없는데.”
“저 생물은 무엇인가?”
젖소는 갑자기 토끼를 가리켰다. 젖소와 문답을 나눈다는 사실이 퍽 달갑지는 않았지만, 우선 이 상황의 이해를 누군가에게 바라야겠기에 흔쾌히 대답했다.
“토끼.”
“그렇지.”
젖소는 고개를 한 차례 끄덕이며 앞발을 옮겨 발굽으로 본인을 가리켰다.
“짐은 무엇인가?”
“젖소.” 나는 전혀 망설임 없이 답했다. “스스로를 용왕이라고 칭하는.”
젖소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젖소는 천천히 앞발을 거두어 원래의 자세로 돌아갔다. 그런 후에도 그가 입을 열기미가 보이지 않아 답답해진 내가 물었다.
“그래서?”
“그래서라니?”
“저건 토끼, 이건 젖소. 그래서 어쨌다는 거지?”
“아직도 모르겠는가?”
나는 어깨를 들었다 놓으며 모르겠다는 몸짓을 보였다.
“저 생물을 토끼로 받아들인 시점에서, 그대는 이미 짐을 용왕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것 아닌가?”
젖소는 다시금 앞발로 토끼를 가리켰다. 나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으로 젖소를 보았다. 그는 내가 느끼기에 이런 이상한 곳에서 별주부를 업고 헤엄치는 이상한 생물을 두고 당연히 토끼라고 생각한 것에 대해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업고 있는 것 역시 정녕 별주부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나는 얼마든지 이 이상한 상황을 수렴할 수도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저 젖소를 용왕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고 오히려 그렇게 생각해야 된다는 말인가?
이제야 정상적인 사람들이 추론할 만한 기초적인 의문을 떠올렸다.
“꿈인가?”
용왕은 즉각 답했다.
“아니다.”
“죽은 건가?”
“아니다.”
“상상 속인가?”
“아니다.”
울컥. 꿈도 현실도 상상도 아니라면 대체 뭐란 말이지? 나는 벌컥 생떼라도 쓰면서 소리를 치고 싶었지만, 젖소는 이미 본인을 용왕이라고 밝혔고 그렇다면 나는 충분한 무례를 범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젖소를 용왕이라고 완벽히 인정한 것도 아니고, 그 이전에 어째서 젖소가 용왕인지 이해부터 하기가 힘들며, 따라서 내 행동은 전혀 무례가 아니……. 이건 정말 어려운 삼단논법이다.
나는 혼란을 이겨내고 겨우, 정중하게 짜증냈다.
“그럼 뭔데요!”
“용궁이지.”
어처구니없는 상황과 대화를 계속 받아들이다보면 결국 참람해버려 더 이상 화를 낼 수도 없이 맥이 탁 풀려버린다. 나는 대꾸할 생각도 않은 채 가만히 용왕과 시선을 마주하다가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용왕은 상세한 설명을 해줄 기미가 보이지 않아 스스로 해결점을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용궁이라는 무형식의 대상은 상상으로써 바다에 존재할 수 있는 상상의 궁전이다. 하지만 내 상상 속에서 역시 상상의 산물인 용왕과 대화를 나누는 건 분명 실증적으로도 변증적으로도 설명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용궁도 용왕도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분명 용왕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따라서 상상이라는 가설은 버리자. 현실이라기에는, 우선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물론 믿을 수 없다고 해서 현실이 아니라는 법은 없다. 이미 현실에서 수많은 몰상식과 비상식을 겪어보았다. 그리고 보라, 내가 지금 이 상황을 인정하기만 하면 모든 의문은 아주 간단히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역시 무수한 상념과 상식으로 이루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인정의 단계에 닿기까지가 어려운 것이다. 조금이라도 기대해볼 만한 꿈이라는 가설은 가장 기초적이고 고전적이면서도 과학적인 방법으로 반론할 수 있다.
“아아.”
손톱 끝으로 내 손등을 꼬집으니 무지 아팠다. 현실이 확실하다. 나는 지금을 현실이라고 인정했을 때 꺼내려고 아껴두었던, 어쩔 수 없이 마지막까지 버려두었던 최후의 가설 하나를 무의식적으로 내뱉었다.
“역시, 내가 미쳤군?”
“아니다.”
그것 참, 다행이군. 나는 얼른 다른 가설을 세워보았다.
“죽기 직전에 뇌에서 뿜어져 나오는 엔돌핀 샤워 때문에 헛것을 보는 건가?”
“아니다.”
“물에 빠지는 순간에 본드라도 불었나?”
“상식이 결여된 추론이군.”
그래, 용왕 이 자식아. 나는 이 상황이 도저히 상식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같은 질문을 던지는 실수를 범했다.
“그럼 여기가 어딘데요?”
“다시 말하지만 용궁이지.”
“이 상황이 뭐냐고요.”
“그대가 용궁에 와있는 상황이지.”
아무래도 우문우답은 끝도 없을 것 같군. 나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담배를 꺼냈다. 놀랍게도 ─ 이 놀라운 상황에 더 놀랄 게 있겠냐만은 ─ 담배는 피울 수 있는 게 없을 정도로 젖어있었다. 의외성에서 당연시 여긴 것이 당연치 않은, 그러니까 상식적으로 당연한 것이 의외라는 상황에 녹아들어 당연히 그러지 않을 거라는 오류를 범했다. 즉, 물에 빠져서 담배가 젖은 게 당연한데 내가 용궁에 있다는 상황에 혼란을 느끼면서 담배가 멀쩡할 수도 있다는 착각을 한 것이다. 적응력이 빠른 건지, 현실성이 없는 건지. 나는 젖은 담배를 집어던지며 중얼거렸다.
“에이, 씨.”
물에 빠진 주제에 멀쩡한 담배를 찾는 내 모습을, 용왕은 젖소 특유의 영롱한 눈으로 가만히 지켜보았다. 왈칵 무안해진 나는 용왕의 눈을 힐끔거리다가 헛기침을 내뱉으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피했다.
“그런 것보다 나는 지금 내가 정말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모르겠어요.”
“다시 말하지만,”
“용궁에 와있는 상황인 건 알겠는데요.” 나는 어떤 대답이 나올지 알기에 얼른 용왕의 말을 끊었다. “왜 와있는 겁니까?”
“글쎄. 그건 그대가 한 일 아닌가? 짐이 묻고 싶은 것을 그대가 묻다니, 이상하군. 그대는 왜 와있는 것이지?”
질문으로 변한 용왕의 대꾸에 화를 내기 이전에, 지금까지 내가 한 질문을 다시금 생각해보았다. 용궁과 용왕이 진즉에 존재하고 있었다고 잠깐 인정하고 생각해보자. 돌이켜보면 용왕의 입장에서는 어째서 하는지 알 수 없는 질문뿐이다. 집으로 놀러 온 생면부지의 생물이 여긴 어디지? 내가 죽었나? 꿈인가? 왜 왔지? 등의 질문을 한다면 나로선 어이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내 질문들은 모두 우문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참으로 성실하게 답해주는 용왕의 답변은, 현답은 못 되어도 정답은 되는 것인가? 비현실에서 사실과 이성을 놓고 상념에 잠기는 건 썩 어려운 일이다. 나는 우선 차분하게 대답해보기로 했다.
“한강에 빠졌어요. 그리고 눈을 뜨니 용궁이네요.”
“그런가? 하지만 그것은 ‘왜’에 대한 대답으로는 부족하군. ‘어떻게’에 대한 대답이라면 되겠지만, 짐은 그 질문을 한 적은 없네.”
“그럼 어떻게 오는 곳이지요? ‘왜’에 대한 대답이라면 저도 하기 힘든 부분인데요.”
“그런가? 인간이 온다면, 글쎄다. 인간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추론해볼 테니 맞는지 보게.”
“네.”
용왕은 짧은 다리를 바꾸어 꼬면서 말을 이었다. 그 모습 참 우습군. 지금 내가 처해있는 상황에 그것은 왠지 유쾌한 반항으로 받아들여졌다. 젖소가 다리를 바꾸어 꼬다니!
하지만 그건 잠깐이었고, 용왕은 정중한 어조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번식의 욕구가 내제되어있고 변화, 발전의 욕구를 표출하는 종족이지. 그런가?”
“네.”
“인간은 태고부터 번식으로써 개체수를 늘려 점차 무리생활로 변화시키면서, 서로를 돕고 가꾸고 거들면서 발전해왔지. 그런가?”
“네.”
“인간의 변화의 두 가지 종류 중 그 하나는 무리생활 중에서 개인적인 편안함과 풍족함을 더더욱 증진시켜 폭넓은 가치관과 자아성찰을 쌓기 위함이지. 다른 시각으로, 욕심이라는 측면에서 볼 수도 있는 것이고. 그런가?”
“……. 네.”
“인간의 다른 변화는 개인을 가꾸어 쌓은 가치관과 자아성찰에서 얻은, 인식과 사상의 변화이지. 그것은 인간을 더 좋게 변화시키기도 하고, 무리생활에서의 개인의 존엄성과 가치를 드높이기도 하지. 그런가?”
“네.”
“인간의 무리생활이라는 것은 그리하여 마침내 개인을 위한 결과물로 돌아와 개인을 드높이는 것이지. 그런가?”
“……. 네.”
서론이 길다. 하지만 인간이 아닌 관점에서 인간을 듣는 건 퍽 재미있었다. 인간이 말하는 단체생활이라는 것은 결국 개인의 편의와 안온함을 위한다는 말인가. 지금껏 단체생활을 하면서 생각지 않았던, 당연한 것들을 깨달았다는 은근한 쾌감이 충격으로 와 닿았다. 인간은 누구나 개인이고, 개인들이 모여 단체가 구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단체생활이라는, 상호발전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개인에 대한 존중과 인내심과 뒷받침이 필요하다. 그것을 단체를 위한 희생이라고 포장하면서 개인을 억압한다. 결국 그 억압은 개인의 발전을 위해서 참는 것이고 결국 개인으로 귀속된다. 어쨌든 단체주의는 개인주의에서 비롯된 것이고 모든 개인들은 개인주의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진심으로 충만한 감탄을 담아 용왕을 보았다.
“인간은 그러한 과정에서 인간만의, 그리고 개인 각각의 시각과 상념을 갖게 되었지. 그런가?”
“네.”
“인간만의 그 시각과 상념은 넓은 것을 수용하기도 하는 반면 다른 한편을 보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지. 이것이 인간만이 갖고 있는, 인간적인 편견이다. 그런가?”
“네.”
서론에 반해 본론이 퍽 짧다. 하지만 길었던 서론이 짧은 본론을 뒷받침하여 충분히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내가 편견과 선입관을 갖고 있었음을 알고 있었기에.
“대답 고맙네. 그렇다네. 그것 때문이지. 다른 한편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용궁을 보지 못한 것이지. 아까 그대가 들어오고 내게 한 질문들을 종합해보건대, 인간에게는 용궁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더군?”
“그렇지요.”
“그럼에도 그대는 적응력이 참 빠른 편이군?”
“나 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그래요.”
“그렇군. 그렇다면 인간 중에서도 아이들의 적응력은 특출하게 느리거나 없다고도 볼 수 있겠군?”
“무슨 말이지요?”
용왕은 대답 대신 앞발을 들어, 내게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르고 지금까지 서있었나? 나는 서있던 자리에서 그대로 주저앉았다.
“인간의 아이들은 이곳에 가끔 온다네. 그대가 오기 얼마 전에도 왔다가 갔었는데. 그들은 욕조나 수영장을 통해서 오곤 하지.”
나는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그런가! 주관이 갖춰지지 않은 아이들은 분명 어른들이 주입하기 이전에는 편견도 없을 테고, 따라서 얼마든지 용궁에 드나들 수 있는 것인가! 부모의 입장에서라면 아이가 물에 빠지는 참극일 테지만.
“그렇군요.”
“그들은 그대완 달리 처음 왔을 때는 별다른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으면서 이리저리 뛰어놀더군. 그러다가 곧 부모를 부르며 울음을 보이더란 말일세. 모든 아이들이 그랬지.”
그럴 수밖에. 비록 적의를 갖추지 못한 아이들이 용궁을 놀이터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세상에서 가장 크고 안전한 존재인 부모가 곁에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 시점에서부터 두려움과 공포라는 감정이 스며들 테니. 그리고 그 감정은 곧 전부가 된다.
“그렇지요. 아이들은 부모가 없으면 불안에 떠니까요. 그런데 아이들은 어떻게 돌아갈 수 있었나요?”
“나도 모르겠네. 눈물을 보이는 순간 떠나버렸으니.”
나는 눈을 굴리면서 바닥을 훑어보았다. 바닥은 한 점 모난 곳이 없이 매끈한 회색이었다.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이, 그저 채색된 듯한 회색일 뿐이다.
“아마도 용궁에 대해 반하는 감정을 갖게 된다면 그러는 게 아닐까요? 아이들이 불안해하는 순간 용궁은 불안전한 공간으로 변할 테니까요.”
용왕은 처음으로 표정의 변화를 보였다. 그 맑은 눈을 조금 크게 뜬 것이 그렇다고 볼 수 있다면. 그리고 그는 허리를 조금 숙여 짧은 앞발로 무릎을 탁 쳤다. 그것 참 힘들어 보이는군!
“옳거니! 그렇군.”
용왕은 새로운 사실에 감탄한 듯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그 초롱초롱한 눈을 빛냈다. 곧 그 눈빛은 내게로 향했다.
“그래서, 그대는?”
“네?”
“그대는 왜 여기에 와있는 거지? 물에 빠지는 순간 새로운 것들이 보인 건가?”
나는 한강에 빠졌을 때의 날 돌이켜보았다.
“나는 물에 빠지는 순간에 최근 가장 즐거웠던 일을 떠올리면서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지요.”
“그랬군.”
주마등을 본 것도 아니고, 생에의 끈덕진 미련으로 끈을 붙잡으려고 노력한 것도 아니다. 그저 내 감정의 가장 밑바닥에 닿았을 뿐이다. 게다가, 게다가 술도 취해있었지! 이번에는 내가 무릎을 쳤다.
“그거군요!”
“뭔가?”
“술에 취했을 때는 만 가지 상념에 잠기기도 하지만 한 가지 감정에 충실하기도 하며,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기도 하지요. 그건 죽기 직전에도 마찬가지더군요.”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까지 흥분해서 말을 내뱉었지? 무뎌졌었던 내 행동과 생각이 감동과 격정으로 다가온 건 또 언제부터지?
“그 때 전 한 가지 감정에 충실했지요. 분명 속으론 욕지기를 했지만, 그 행동을 돌이켜보니 퍽 즐거웠어요. 술에 취한 죽기 전의 나는 오직 그 감정에만 몰입하고 있었어요.”
“알겠군. 그래서 그대의 편견이 순간 사라진 것이군.”
“그렇지요. 다른 생각은 일절 안 했기에 편견이라는 닫힌 눈도 순간적으로 사라졌고, 용궁이 반드시 없을 거라는 생각도 못한 것이지요. 그리고 이곳으로 들어왔군요.”
“이해가 되는군.”
용왕은 미소 같은 것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젖소가 젖소로서가 아닌 용왕으로서 존재하고 있자니 다양한 표정이 가능하군.
“헌데 아까는 아이들이 불안이라는 감정 때문에 이곳을 떠난다고 말했잖은가?”
“상황의 차이죠. 아이들은 용궁을 인지하고 있었고, 나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고요. 그래서 아이들은 용궁에 대해 거부하는 감정을 가졌고, 저는 아니지요. 인지하지도 못한 존재를 거부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이해가 되는군.”
용왕은 조금 전과 같은 말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헌데 그 즐거운 일이라는 건 뭐였는지 물어도 되는가?”
해는 조금 떠있지만 구름이 한껏 모여 가리고 있었다. 나는 홀딱 젖은 옷을 껴입고 바들바들 떨면서 구멍가게에서 담배를 샀다. 구멍가게 주인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날 보았다. 나는 담배를 피우면서 벤치에 앉아 조금씩 햇빛을 받고 있는, 그러나 구름 때문에 아직은 어두운 한강을 바라보았다.
용궁은 들어갔을 때처럼 당황스럽게 나왔다. 용왕과의 대화중에 부장에게 낸 그 통쾌한 사표에 대해 얘기하다가, 문득 부장이 협박죄로 날 신고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엄습해왔다. 그 순간, 내 과오를 깨달을 새도 없이 내 몸은 다시 물에 흠뻑 젖으면서 부력으로 떠올랐다. 놀라 허우적대며 얼른 숨을 쉬어야한다는 생각이 뇌리를 가득 메운 바람에, 용궁을 순간적으로 잊게 되었다. 그리고 강물로 솟아올라 발버둥치고 있었다. 제기. 잠깐이라도 용궁을 머릿속에서 지우니 시야에서 사라져버리는군. 까다로운 공간이로세.
“후앗취!”
격렬한 재채기가 튀어나왔다. 어쨌든 겨울의 한강은 반대다! 나는 튕겨지듯이 일어나서 도로변으로 뛰어갔다. 하지만 택시는 쉬이 잡히지 않았다. 흠뻑 젖은 손님을 태우는 건 아무래도 내키지 않는 일이겠지. 잠깐의 달리기에 아주 조금 올라왔던 열까지 식으면서, 내 몸의 감각은 아예 사라졌다. 나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양팔을 감싸고 몸을 수그렸다. 그 자세에서 움직이지 않으니 괜찮았다. 움직이지 않을 때의 얘기지만. 그런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택시 한 대가 섰다. 네, 기사님. 세상은 아직 따뜻하네요. 히터의 열기가 가득한 택시 안은 더없이 따뜻했다. 차츰 몸의 긴장도 풀리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여러 가지 생각이 밀려들어오면서 잠도 쏟아졌다. 그 때문에 내가 용궁에 ‘왜’ 갔던 건지에 대한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