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마당 - 단편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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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처음으로 사귄 친구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가? 내가 처음으로 사귄 친구의 이름은 ‘재잘거리는 웃음소리가 매력적인 마당의 진달래꽃들’이다. ‘재잘거리는 웃음소리가 매력적인 마당의 진달래꽃’들은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 처음으로 나에게 말을 걸어준 꽃들이다. 그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친구들이 자신만의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만나는 친구들마다 새로 이름을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나는 친구들을 ‘재잘거리는 웃음소리가 매력적인 마당의 진달래꽃들’처럼 뭉뚱그려 부르고 있다. 아무튼 나는 날마다 깔깔거리는 진달래꽃들을 시작으로 ‘매캐한 매염을 마시는 도로변의 양버즘나무’, 어렸을 적 꺾였던 자리가 이따금씩 쑤셔오는 ‘이쁜척하기 좋아하는 거실 꽃병의 주인 빨간 장미’, 아주 오래 된 이야기도 전부 기억하고 있는 ‘우쭐대는 강변도로의 대장 느티나무’등등의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나는 어렸을 대부터 사람보다는 나무나 꽃 친구들과 이야기하기를 좋아했고, 당연하게도 세상 사람들 모두가 꽃이나 나무와 대화를 할 수 있는 줄 알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어렸을 적부터 줄곧 학교보다 병원에 더 많이 드나들기 때문에 -어른들도 견디기 힘들다는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아가며-이기도 하고, 종종 어른들께 꽃이나 나무 친구들과 떠든 이야기를 말씀 드렸을 때에도 그저 웃으며 들어주셨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 참, 지금 와서 알게 된 이야기지만, 어른들은 어린 꼬마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이야기인줄 알고 계셨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 시절 나는 거리낌 없이 근처의 나무나 꽃들에게 말을 걸고는 했다. 나무들은 대체로 아는 것은 많지만 이야기 해주는 것은 별로 없고, 반대로 꽃들은 정말 수다스러웠지만 대부분 허풍이거나 아는 것이 없을 때가 많았다.
그러다 내가 열 살이 되던 해, 학교의 어느 발표 시간에 기어이 사건은 터지고 말았다. 막 여름방학이 끝났을 무렵이었는데, 방학동안 뭘 하며 지냈냐는 선생님의 물음에 나는 “매일 매일 꽃집에 찾아가 꽃들과 즐겁게 떠들며 놀았습니다.”라고 발표했던 것이다. 잠자코 듣고 있던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고 나는 어째서 아이들이 그렇게 좋아하며 웃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이야기의 어디에 웃긴 부분이 있다는 걸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내 이야기가 재밌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선생님을 쳐다보았는데 선생님 역시 나와 같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시고 계셨다. 선생님께서는 의아한 듯이 나에게 물었다.
“꽃이랑 이야기 했다는 말이 무슨 뜻이니?”
나는 어이가 없었다. 선생님이 어째서 그런 질문을 하시는 걸까? 나는 ‘선생님이 수업을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이에요?’라고 물어봐서 내 기분을 선생님께 이해시키고 싶었지만 나는 꾹 참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너무 짧게 말한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드리기 위해 입을 열었다.
“꽃집에서 꽃이랑 이야기 했다고요. 물론 꽃집에 있는 꽃들은 다 꼬마에 멍청한 아이들 뿐 이라서 시시함 농담 따먹기밖에 할 게 없지만 그래도 꽃집이 새 친구들을 가장 많이 사귈 수 있거든요. 길거리에 있는 가로수들도 좋은 이야기 친구들이긴 하지만……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길거리는 무지무지 시끄럽잖아요? 꽃집은 조용하기도 하고, 친구들도 많이 사귈 수 있으니까 제일 좋거든요.”
나는 말을 끝마치고 나서야 교실이 이상하게 조용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의아해 하며 아이들을 돌아볼 때 즈음 선생님의 목소리가 교실안의 적막을 찢고 내 귀에 파고들었다.
“은영아. 사람은 꽃과 이야기 할 수 없어.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니?”
나는 선생님의 질문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뭐라고 말씀하신 거야? 선생님은 꽃과 이야기 해보신 적이 없으신가?’ 선생님의 말씀이 끝남과 함께 아이들이 조금씩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웅성거림 속에서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거짓말쟁이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서둘러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했다.
“선생님, 저는 지금 거짓말 하는 거 아닌데요. 선생님은 꽃이랑 이야기 해본 적이 없으세요?”
내가 서둘러 대답했음에도 선생님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채 나를 내려다보고 계셨다. 아이들의 웅성거림도 점점 더 커졌고 그 안에 섞여있는 거짓말쟁이라는 말도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은영이는 거짓말쟁이야!”, “발표할 게 없으니 아무 말이나 막 지어내는 거야!” 아이들의 웅성거림이 내 귀에도 똑똑히 들어올 만큼 커지고 있었지만 나는 들으면서도 아이들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당황해서 선생님을 올려다보았다. 선생님은 굳은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계셨다. 나는 문득 불안해졌다.
“저 거짓말쟁이 아니죠?”
내 말에 대답소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선생님께서는 잠시 나를 내려다보시다 말고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준 뒤 나를 자리로 돌려보냈다. 나는 자리로 돌아가는 내내 짜증나는 여름 모기떼가 달라붙는 것처럼 계속해서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듣기 싫었다. 그래서 재빨리 자리에 앉은 다음 옆자리의 금별이에게 꽃이나 나무와 떠드는 것이 뭐가 이상하냐고 물었다. 금별이는 해처럼 밝게 웃으며 내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응. 이상해. 그런 사람 없잖아.”
금별이의 밝은 웃음과 함께 들려온 대답은 전혀 밝은 내용이 아니었다. 나는 초조함을 느끼며 다른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나는 꽃들의 아기 다람쥐 같은 귀여운 말투, 길가에 난 잡초들이 매사에 무관심한 일, 책보다 똑똑한 나무들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었지만 내 이야기를 이해하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작당하고 나를 구덩이로 몰아넣는 것 같았다. 나는 꼼짝없이 거짓말쟁이가 되었고, 아이들은 나와 마주칠 때 마다 나를 놀려댔다.
‘믿을 수가 없어! 아무도 식물과 대화해 본 적이 없는 거야?’
나는 종례가 끝나자마자 가장 가까운 나무를 향해 걸어갔다. 학교 운동장의 한 구석에 굵게 뿌리를 내린 은행나무 앞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은행나무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야! ‘학교보다 오래 살아서 학교보다 할 말 많은 은행나무’야! 내 목소리 들리니?”
내 목소리를 들은 아이들이 킥킥대며 내 뒤로 몰려들었다. 뒤 쪽에 모인 아이들 중에는 거짓말 좀 그만하라며 짜증을 내는 아이도 있었다. 나는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에는 신경 쓰지 않은 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은행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사실 학교에 있는 나무와 이야기를 시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나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은행나무가 대답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야말로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이 아닌가? 은행나무는 내가 부른지 몇 초가 지나고 나서야 졸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목소리가 시끄러운 어린 꼬마야. 나에게 무슨 일이지?”
은행나무의 굵직한 목소리를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이로써 내 누명이 벗겨진 것이다. 나는 속으로 작게 ‘만세!’를 외치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다들 직접 자기 귀로 확인도 했으니 내 말을 믿을 수 있겠지?그러나 나의 기대와는 달리 아이들은 여전히 비웃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한 남자아이가 나를 비꼬았다.
“뭐야? 은행나무가 잠이라도 자고 있냐?”
아이들은 모두 큰 소리로 웃어댔다. 그제야 나는 무언가 일이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내 귀에는 여전히 은행나무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이 예의 없는 어린 꼬마야. 잠자는 나를 왜 깨운 건지 어서 말 하거라.” 나는 혹시나 하며 은행나무에게 몇 마디를 더 건네며 형식적인 대화를 해 보았지만 아이들에게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아이들은 내가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면 은행나무와 이야기 해 보라고 말하고 있었다. “거짓말쟁이! 거짓말쟁이!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면 은행나무와 대화하는 걸 보여줘!” 아이들은 계속 큰 목소리로 나를 놀려댔고 점점 더 많은 아이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거짓말쟁이! 거짓말쟁이!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면 은행나무와 대화하는 걸 보여줘!” 당황한 나는 은행나무에게 좀 더 큰 목소리로 말하게 했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은행나무의 목소리를 들려줬는데도 변함이 없는 아이들에게 당황한 나는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내 뒤를 따라왔다.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집안 거실 꽃병의 주인인 빨간 장미에게 인사를 한 뒤 아빠와 엄마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남김없이 말씀드렸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식물과 이야기 한다는 말을 전에도 여러번 들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부모님은 그 때마다 잔잔한 웃음으로 내 마음을 안심시켜 주었다. 그런데 내 이번에 이야기가 끝났을 때 부모님의 표정은 박물관소나무의 목소리처럼 침중한 분위기였다. 한참을 아무 말이 없으시던 아빠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그동안 네가 식물과 대화한다는 말이 거짓말인 줄 알고 있었단다. 은영아, 지금도 꽃이나 나무와 이야기 할 수 있니?”
나는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도 없는 빌딩에 나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언제나 내 이야기를 듣고 같이 즐거워 해주셨었다. 그런데 두 분도 다른 사람들처럼 식물과 대화할 수 없는 걸까? 나는 불안감을 억누르며 대답했다.
“방금도 ‘집안 거실 꽃병의 주인인 빨간 장미’와 인사를 나눴는데요.”
엄마와 아빠의 표정을 잠시 살펴보던 나는 재빨리 덧붙였다.
“이거 거짓말 아니에요.”
내 이야기를 듣고 나서 두 분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셨다. 그 모습을 본 나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부모님도 날 보고 거짓말이라고 하시면 어쩌지? 엄마와 아빠는 내숭떠는 꽃집의 제비꽃처럼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셨다. 내가 슬그머니 창밖의 감나무를 쳐다보려고 할 때 엄마가 말씀하셨다.
“우린 널 믿는단다.”
그러고는 두 분은 꽃이나 나무와 대화할 수 있는 것은 나뿐이라고 이야기 하셨다. 내가 식물과 대화할 수 있는 것이 고쳐야 할 병이라는 이야기도 그 때 하셨다. 아빠는 내 병이 낫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친구들과 수다 떠는 버릇을 없애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친구들과 대화할 수 없게 되는 것이 싫었지만 아버지가 덧붙인 말에는 얌전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이대로 계속 식물들과 대화하다간 언젠간 미쳐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병원에 가야한다고 하셨다.
그 이후 나는 몇 달에 걸쳐 어려 병원을 전전했다. 많은 의사 선생님들과 상담사들을 만났지만 내 말 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간혹 가다 몰래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의 발소리가 시끄러워서 잠을 못자는 길거리의 들꽃’들과 떠드는 것만이 유일한 휴식이었다. 나는 하루에도 몇 시간씩 이 병원 저 병원을 돌아다니면서 검사를 받아야 했다. IQ검사부터 시작해서 뇌 사진도 찍었다. 이상한 의자에 앉아 최면요법을 받아보기도 했다. 내 뇌나 신경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부모님은 나를 정신과 병원으로 데리고 가셨다. 병원은 생각보다 밝고 아늑한 분위기였다. 나는 정신병원이라는 말에 지레 겁을 먹었었는데, 오히려 보통의 병원보다도 안심되는 분위기였다. 옷에서 커피냄새가 나는 의사 선생님께서 나에게 물었다.
“전화로 들어본 바로는 네가 환청을 듣는다고 하더구나. 사실이니?”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님 몰래 이상한 약을 먹은 적은 없고 어렸을 때 누가 돌아가신 적도 없다고 대답했다. 그동안 다른 상담사들과도 많이 해보았던 지루한 질문에 대답하던 중 나는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았다.
“그럼 가장 목소리가 큰 친구는 누구니?”
이런 질문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나는 깜짝 놀랐다. 엉겁결에 ‘도끼가 여전히 박혀있는 학교 뒷산의 밤나무’가 목소리가 가장 크다고 대답한 것을 시작으로 선생님은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고, 나는 오랫동안 친구들과 대화하지 못해 헷갈려 하면서도 의사 선생님께 모두 대답했다. 덕분에 선생님은 ‘우쭐대는 강변도로의 대장 느티나무’가 사실 그 동네에서 가장 어린 느티나무라던가, ‘다람쥐는 없고 청설모만 보인다고 하소연하는 도토리나무’는 자기 머리에 둥지를 얹고 싶은 것이 소원이라던가 식물들은 딱히 자신들의 이름을 가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던가 하는 나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 까지 들을 수 있었다. 그 정신과의 선생님과의 상담은 그동안의 상담 중에서 가장 즐거웠다. 그러나 즐거운 상담과는 달리 상담의 결과는 즐겁지 못했다. 상담이 끝난 후 선생님은 내가 좀 더 큰 병원에서 장기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이후로도 나는 몇 주간 여러 가지 치료나 검사를 받았고, 그 효과가 의심되는 대체치료나 교회치료, 무당의 굿치료까지 해보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내가 ‘강변 따라 돋아난 바보스러운 잡초’들과 수다를 떠는 데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결국 부모님은 오랜 고민 끝에 나를 입원시키기로 결정하셨다.
여기까지가 내가 이곳에 입원하게 된 이야기다. 처음 입원했을 때 나는 부모님이 보고 싶어서 매일을 울기도 하였고 정신없이 빠져나갈 궁리를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두 달쯤 지났을 때 그것도 지치고 말았고 반년이 지났을 때에는 병동 안에서 놀 거리를 찾아다니기 시작했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열네 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병동의 식구들은 모두 즐겁게 축하해 주었고 나도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웃을 수 있었다. 병은 아직 고쳐지지 않은 것 같다. 약 사년간이나 치료를 계속했지만 나는 여전히 식물들과 이야기 할 수 있다. 병동의 간호사들은 모두들 친절해서 불편함을 겪는 일은 없다. 다만 내 또래의 환자 친구들은 가끔가다 발작을 일으키기도 하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긴장하게 된다. 간혹 꽃이나 나무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을 본 적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절대로 논리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 같지는 않았다. 매일 보는 뉴스나 신문에서 바깥의 소식을 확인하고는 있지만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바깥은 멍청이들만 가득한 돼지우리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식물과 대화하는 법을 이야기해도 거짓말로 치부해버리는 바깥과 달리 이곳의 사람들은 모두 참을 성 있게 들어주고, 절대 나를 놀리지 않는다. 초등학교 때 아이들이 놀려댔던 기억에 이따금씩 악몽울 꾸기도 하는 나에게는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걸쭉한 풀을 국자로 젓는 것처럼 생각을 둔하게 하는 약을 매일 참아내기만 한다면 꽤 즐겁고 순탄한 생활이다.
나는 이곳의 생활이 마음에 든다.
그러다 내가 열 살이 되던 해, 학교의 어느 발표 시간에 기어이 사건은 터지고 말았다. 막 여름방학이 끝났을 무렵이었는데, 방학동안 뭘 하며 지냈냐는 선생님의 물음에 나는 “매일 매일 꽃집에 찾아가 꽃들과 즐겁게 떠들며 놀았습니다.”라고 발표했던 것이다. 잠자코 듣고 있던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고 나는 어째서 아이들이 그렇게 좋아하며 웃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이야기의 어디에 웃긴 부분이 있다는 걸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내 이야기가 재밌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선생님을 쳐다보았는데 선생님 역시 나와 같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시고 계셨다. 선생님께서는 의아한 듯이 나에게 물었다.
“꽃이랑 이야기 했다는 말이 무슨 뜻이니?”
나는 어이가 없었다. 선생님이 어째서 그런 질문을 하시는 걸까? 나는 ‘선생님이 수업을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이에요?’라고 물어봐서 내 기분을 선생님께 이해시키고 싶었지만 나는 꾹 참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너무 짧게 말한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드리기 위해 입을 열었다.
“꽃집에서 꽃이랑 이야기 했다고요. 물론 꽃집에 있는 꽃들은 다 꼬마에 멍청한 아이들 뿐 이라서 시시함 농담 따먹기밖에 할 게 없지만 그래도 꽃집이 새 친구들을 가장 많이 사귈 수 있거든요. 길거리에 있는 가로수들도 좋은 이야기 친구들이긴 하지만……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길거리는 무지무지 시끄럽잖아요? 꽃집은 조용하기도 하고, 친구들도 많이 사귈 수 있으니까 제일 좋거든요.”
나는 말을 끝마치고 나서야 교실이 이상하게 조용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의아해 하며 아이들을 돌아볼 때 즈음 선생님의 목소리가 교실안의 적막을 찢고 내 귀에 파고들었다.
“은영아. 사람은 꽃과 이야기 할 수 없어.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니?”
나는 선생님의 질문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뭐라고 말씀하신 거야? 선생님은 꽃과 이야기 해보신 적이 없으신가?’ 선생님의 말씀이 끝남과 함께 아이들이 조금씩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웅성거림 속에서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거짓말쟁이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서둘러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했다.
“선생님, 저는 지금 거짓말 하는 거 아닌데요. 선생님은 꽃이랑 이야기 해본 적이 없으세요?”
내가 서둘러 대답했음에도 선생님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채 나를 내려다보고 계셨다. 아이들의 웅성거림도 점점 더 커졌고 그 안에 섞여있는 거짓말쟁이라는 말도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은영이는 거짓말쟁이야!”, “발표할 게 없으니 아무 말이나 막 지어내는 거야!” 아이들의 웅성거림이 내 귀에도 똑똑히 들어올 만큼 커지고 있었지만 나는 들으면서도 아이들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당황해서 선생님을 올려다보았다. 선생님은 굳은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계셨다. 나는 문득 불안해졌다.
“저 거짓말쟁이 아니죠?”
내 말에 대답소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선생님께서는 잠시 나를 내려다보시다 말고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준 뒤 나를 자리로 돌려보냈다. 나는 자리로 돌아가는 내내 짜증나는 여름 모기떼가 달라붙는 것처럼 계속해서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듣기 싫었다. 그래서 재빨리 자리에 앉은 다음 옆자리의 금별이에게 꽃이나 나무와 떠드는 것이 뭐가 이상하냐고 물었다. 금별이는 해처럼 밝게 웃으며 내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응. 이상해. 그런 사람 없잖아.”
금별이의 밝은 웃음과 함께 들려온 대답은 전혀 밝은 내용이 아니었다. 나는 초조함을 느끼며 다른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나는 꽃들의 아기 다람쥐 같은 귀여운 말투, 길가에 난 잡초들이 매사에 무관심한 일, 책보다 똑똑한 나무들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었지만 내 이야기를 이해하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작당하고 나를 구덩이로 몰아넣는 것 같았다. 나는 꼼짝없이 거짓말쟁이가 되었고, 아이들은 나와 마주칠 때 마다 나를 놀려댔다.
‘믿을 수가 없어! 아무도 식물과 대화해 본 적이 없는 거야?’
나는 종례가 끝나자마자 가장 가까운 나무를 향해 걸어갔다. 학교 운동장의 한 구석에 굵게 뿌리를 내린 은행나무 앞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은행나무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야! ‘학교보다 오래 살아서 학교보다 할 말 많은 은행나무’야! 내 목소리 들리니?”
내 목소리를 들은 아이들이 킥킥대며 내 뒤로 몰려들었다. 뒤 쪽에 모인 아이들 중에는 거짓말 좀 그만하라며 짜증을 내는 아이도 있었다. 나는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에는 신경 쓰지 않은 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은행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사실 학교에 있는 나무와 이야기를 시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나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은행나무가 대답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야말로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이 아닌가? 은행나무는 내가 부른지 몇 초가 지나고 나서야 졸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목소리가 시끄러운 어린 꼬마야. 나에게 무슨 일이지?”
은행나무의 굵직한 목소리를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이로써 내 누명이 벗겨진 것이다. 나는 속으로 작게 ‘만세!’를 외치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다들 직접 자기 귀로 확인도 했으니 내 말을 믿을 수 있겠지?그러나 나의 기대와는 달리 아이들은 여전히 비웃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한 남자아이가 나를 비꼬았다.
“뭐야? 은행나무가 잠이라도 자고 있냐?”
아이들은 모두 큰 소리로 웃어댔다. 그제야 나는 무언가 일이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내 귀에는 여전히 은행나무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이 예의 없는 어린 꼬마야. 잠자는 나를 왜 깨운 건지 어서 말 하거라.” 나는 혹시나 하며 은행나무에게 몇 마디를 더 건네며 형식적인 대화를 해 보았지만 아이들에게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아이들은 내가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면 은행나무와 이야기 해 보라고 말하고 있었다. “거짓말쟁이! 거짓말쟁이!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면 은행나무와 대화하는 걸 보여줘!” 아이들은 계속 큰 목소리로 나를 놀려댔고 점점 더 많은 아이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거짓말쟁이! 거짓말쟁이!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면 은행나무와 대화하는 걸 보여줘!” 당황한 나는 은행나무에게 좀 더 큰 목소리로 말하게 했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은행나무의 목소리를 들려줬는데도 변함이 없는 아이들에게 당황한 나는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내 뒤를 따라왔다.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집안 거실 꽃병의 주인인 빨간 장미에게 인사를 한 뒤 아빠와 엄마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남김없이 말씀드렸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식물과 이야기 한다는 말을 전에도 여러번 들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부모님은 그 때마다 잔잔한 웃음으로 내 마음을 안심시켜 주었다. 그런데 내 이번에 이야기가 끝났을 때 부모님의 표정은 박물관소나무의 목소리처럼 침중한 분위기였다. 한참을 아무 말이 없으시던 아빠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그동안 네가 식물과 대화한다는 말이 거짓말인 줄 알고 있었단다. 은영아, 지금도 꽃이나 나무와 이야기 할 수 있니?”
나는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도 없는 빌딩에 나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언제나 내 이야기를 듣고 같이 즐거워 해주셨었다. 그런데 두 분도 다른 사람들처럼 식물과 대화할 수 없는 걸까? 나는 불안감을 억누르며 대답했다.
“방금도 ‘집안 거실 꽃병의 주인인 빨간 장미’와 인사를 나눴는데요.”
엄마와 아빠의 표정을 잠시 살펴보던 나는 재빨리 덧붙였다.
“이거 거짓말 아니에요.”
내 이야기를 듣고 나서 두 분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셨다. 그 모습을 본 나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부모님도 날 보고 거짓말이라고 하시면 어쩌지? 엄마와 아빠는 내숭떠는 꽃집의 제비꽃처럼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셨다. 내가 슬그머니 창밖의 감나무를 쳐다보려고 할 때 엄마가 말씀하셨다.
“우린 널 믿는단다.”
그러고는 두 분은 꽃이나 나무와 대화할 수 있는 것은 나뿐이라고 이야기 하셨다. 내가 식물과 대화할 수 있는 것이 고쳐야 할 병이라는 이야기도 그 때 하셨다. 아빠는 내 병이 낫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친구들과 수다 떠는 버릇을 없애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친구들과 대화할 수 없게 되는 것이 싫었지만 아버지가 덧붙인 말에는 얌전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이대로 계속 식물들과 대화하다간 언젠간 미쳐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병원에 가야한다고 하셨다.
그 이후 나는 몇 달에 걸쳐 어려 병원을 전전했다. 많은 의사 선생님들과 상담사들을 만났지만 내 말 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간혹 가다 몰래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의 발소리가 시끄러워서 잠을 못자는 길거리의 들꽃’들과 떠드는 것만이 유일한 휴식이었다. 나는 하루에도 몇 시간씩 이 병원 저 병원을 돌아다니면서 검사를 받아야 했다. IQ검사부터 시작해서 뇌 사진도 찍었다. 이상한 의자에 앉아 최면요법을 받아보기도 했다. 내 뇌나 신경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부모님은 나를 정신과 병원으로 데리고 가셨다. 병원은 생각보다 밝고 아늑한 분위기였다. 나는 정신병원이라는 말에 지레 겁을 먹었었는데, 오히려 보통의 병원보다도 안심되는 분위기였다. 옷에서 커피냄새가 나는 의사 선생님께서 나에게 물었다.
“전화로 들어본 바로는 네가 환청을 듣는다고 하더구나. 사실이니?”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님 몰래 이상한 약을 먹은 적은 없고 어렸을 때 누가 돌아가신 적도 없다고 대답했다. 그동안 다른 상담사들과도 많이 해보았던 지루한 질문에 대답하던 중 나는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았다.
“그럼 가장 목소리가 큰 친구는 누구니?”
이런 질문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나는 깜짝 놀랐다. 엉겁결에 ‘도끼가 여전히 박혀있는 학교 뒷산의 밤나무’가 목소리가 가장 크다고 대답한 것을 시작으로 선생님은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고, 나는 오랫동안 친구들과 대화하지 못해 헷갈려 하면서도 의사 선생님께 모두 대답했다. 덕분에 선생님은 ‘우쭐대는 강변도로의 대장 느티나무’가 사실 그 동네에서 가장 어린 느티나무라던가, ‘다람쥐는 없고 청설모만 보인다고 하소연하는 도토리나무’는 자기 머리에 둥지를 얹고 싶은 것이 소원이라던가 식물들은 딱히 자신들의 이름을 가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던가 하는 나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 까지 들을 수 있었다. 그 정신과의 선생님과의 상담은 그동안의 상담 중에서 가장 즐거웠다. 그러나 즐거운 상담과는 달리 상담의 결과는 즐겁지 못했다. 상담이 끝난 후 선생님은 내가 좀 더 큰 병원에서 장기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이후로도 나는 몇 주간 여러 가지 치료나 검사를 받았고, 그 효과가 의심되는 대체치료나 교회치료, 무당의 굿치료까지 해보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내가 ‘강변 따라 돋아난 바보스러운 잡초’들과 수다를 떠는 데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결국 부모님은 오랜 고민 끝에 나를 입원시키기로 결정하셨다.
여기까지가 내가 이곳에 입원하게 된 이야기다. 처음 입원했을 때 나는 부모님이 보고 싶어서 매일을 울기도 하였고 정신없이 빠져나갈 궁리를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두 달쯤 지났을 때 그것도 지치고 말았고 반년이 지났을 때에는 병동 안에서 놀 거리를 찾아다니기 시작했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열네 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병동의 식구들은 모두 즐겁게 축하해 주었고 나도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웃을 수 있었다. 병은 아직 고쳐지지 않은 것 같다. 약 사년간이나 치료를 계속했지만 나는 여전히 식물들과 이야기 할 수 있다. 병동의 간호사들은 모두들 친절해서 불편함을 겪는 일은 없다. 다만 내 또래의 환자 친구들은 가끔가다 발작을 일으키기도 하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긴장하게 된다. 간혹 꽃이나 나무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을 본 적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절대로 논리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 같지는 않았다. 매일 보는 뉴스나 신문에서 바깥의 소식을 확인하고는 있지만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바깥은 멍청이들만 가득한 돼지우리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식물과 대화하는 법을 이야기해도 거짓말로 치부해버리는 바깥과 달리 이곳의 사람들은 모두 참을 성 있게 들어주고, 절대 나를 놀리지 않는다. 초등학교 때 아이들이 놀려댔던 기억에 이따금씩 악몽울 꾸기도 하는 나에게는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걸쭉한 풀을 국자로 젓는 것처럼 생각을 둔하게 하는 약을 매일 참아내기만 한다면 꽤 즐겁고 순탄한 생활이다.
나는 이곳의 생활이 마음에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