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어.
모모를 데리고 온 이후부터, 늘 눈이 내려. 그래서 나는 모모를 겨울 아가씨(동희, 冬姬)-라고 부르곤 해. 그럴때면 모모는 밤을 담은 것 같은 눈으로 나를 보고 웃지. 그 까만 눈동자에는 우리가 헤메는 세계가 담겨 있어-.
캄캄한 밤하늘, 우리를 실은 배는 끝도 없는 어둠속을 목표도 없이 몇 천, 몇 만년이나 돌고 있고, 때때로 주위를 둘러보지만 아무도 없어. 모모는 그런 천년 주기가 얼마만큼이나 왔는지 머리카락 수로 세야 할 만큼 지나갔을 때 찾아왔지- 얼음으로 만들어진 배를 타고.
그녀가 어쩌다가 왔는지는 몰라. 관심도 없어. 하지만 그녀가 나를 보고 웃는 그 눈이 좋아.
우주는 이제 주변을 빙 돌아봐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정도로 좁아졌어.
세상에 사람이 뿌려놓은 많은 세상들이 노인이 되어 찾아와. 백색거성이 되어버린 태양,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지구의 재, 처녀좌에 있던 신비로운 문명들, 우주의 고래, 문화의 시체들, 사람의 발자국. 우주가 뿌려놓은 빛들은 이제 시작되었던 중심으로 다가오지. 그 모습은 굉장한 장관이야. 하얀 시체들로 쌓인 백색의 강과 벽, 산.
은하수만큼이나 어마어마한 유성우가 눈처럼 쏟아졌을 때 모모를 만났어.
솔직히 말하자면- 만났다는 말은 옳지않아.
나는 그녀를 알고 있었어.
모모의 진짜 이름은 RH-엡실론 타입, 코드명 Ami야. 하지만 이건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고(물론, 모모 말고는 아무도 없으니까 말이야)모모에게 알려줄 생각도 없어. 모모는 지금 자신이 인간이라고 굳게 믿고 있어. 이제 세상에 남은 인간은 나와 모모뿐이라고, 그렇게 알려줬지. 우리는 이제 창세처럼 말세를 맞이할 에덴의 한쌍이라고.
아무렴 어때.
이제 인간은 나 하나밖에 남지 않았고- 내가 인간이란 걸 증명해줄 사람도 남아있지 않아.
그렇다면 모든 인간의 권한으로, 모모를 인간으로 인정해줘도 되지 않겠어? 부결따윈 없어.
모모는 사람처럼 웃고, 사람처럼 시무룩해져. 거기에 무기질의 요소는 없어- 그거야. 그것만으로 충분해. 사람과 사람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 사람이 사람 모습의 기계를 만든데는 그런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우주는 굉장한 공백투성이니까, 마주 앉아 얘기할 상대가 필요했다고.
그리고 이제 눈 내리는 풍경이 보이는 자리에 느긋이 앉아 뜨거운 차를 마시며 하얀 산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 '아 이제 우주도 제법 좁아졌어'하고 마주 앉은 상대에게 웃으면서 농담하는거지. 우리를 싣은 세상은 그렇게 시시각각 멸망해가. 그건 너무 거대한 모습이라, 거부할 기력도 생기지 않아. 오히려 세상의 이 많은 아름다운 것과 끝을 같이 할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지.
지금 밖은 노을이 져.
우주의 가운데에는 신님이 앉은 의자-어쩐지 신은 왕좌같은건 어울리지 않아-가 저렇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반짝반짝하고 아름다운 별이 있어. 그건 어쩌면 천국 같은 다른 세계에서 새어들어오는 빛이 아닐까 싶어. 열은 없지만 시리도록 밝고, 같은 하얀 색이지만 다가오는 세계의 벽과는 다른 느낌이지. 그건 주기적으로 가려지곤 해. 아름다운 것은 너무 오래 보면 안돼, 라고 말하는 듯 누군가 장막을 쳐버리지.
아름다운 건 오래가는 법이 없어.
모모와의 이 한때도 언젠간 시들지 않을까 싶지만- 그건 오래지 않을거라고 생각해.
다행히 이 아름다운 세계는 저물어가고 있어. 에필로그 없이 끝날 세계이기에 나와 모모는 이 세상을 사랑해. 단지 두려운건, 혹시 그녀가 자신이 RH-엡실론 타입 Ami라는 것을 알게 되지 않을까 싶은거야.
그런 기회는 얼마든지 않아.
결정적으로 큰 차이가 있지. 사람은 쉽게 저물어. 이 배안에서 그녀가 그걸 깨닫긴 힘들겠지만-
자, 세상은 이제 밤이야.
눈은 아직도 내리고 있고,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눈은 때때로 위로 솟아오르고, 창에 달라 붙고, 빠른 속도로 멀어지기도 하지. 하지만 그 행복해보이는 빛은 영영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 -그리고 유독 눈송이 하나가 내 눈 위에 상을 맺혔어. 그 상은 무척 길고- 잊혀지지 않을 만큼 섬세해서, 마치 겨울이 남기고 간 흉터(冬痕)같았지.
눈가에 얼룩이 진 듯 사라지지 않는 그 눈송이는- 반짝거리고 있었지. 그건 말을 하고 있었어.
소통. 사람이 그토록 헤메어 찾던 것.
반짝거리는 모르스 부호. 이니그마. 그건, 사람의 흔적이었던거야.
사람이 있어.
이 눈보라 너머, 아직도 아득한 우주, 백색 세계의 끝에 누군가 내게 말을 걸고 있었어.
사람이 아직 있느냐고.
찻잔의 차가 식기에 충분할 정도로 고민은 길었어.
모모와의 시간은 행복했고, 아름다웠지. 함께 손을 붙잡고 이 세상의 끝을 볼거라 생각해서, 그게 더욱 예쁘고 소중하게 생각되었는지도 몰라. 하지만, 언젠가 끝을 보게 될거라 생각되긴 했지만.
그녀는 Ami잖아.
모모가 Ami라고 덜 소중한 건 아냐. 하지만 백색 세계의 끝에, 나와 같은 사람이 있어. 모모와의 시간도 소중하지만, 만나지 않은 인연을 포기할 정도로 내게 관계의 대상이 많은 것도 아냐.
내 배는 그곳으로 이동할 수 없어. 이건 나의 작은 저택. 갈 수 있는게 있다면, 얼어붙어있던 모모의 배. 그거라면 분명 그 겨울흔(冬痕)이 새겨진 곳으로 갈 수 있을거야. 하지만 나는 이 저택을 떠나고선 한시도 살 수 없다고 양부는 말했지. 결국 나는- 모모를 다시 그 배에 태울 수 밖에 없었어.
반드시 돌아와달라고.
찾지 못하더라도 좋으니까, 꼭 돌아와달라고.
그렇게 까마득한 곳으로 보내는 주제에 몇번이나 말하면서- 다가오는 세계의 벽을 향해 손을 흔들었지. 그렇게 비좁게 느껴졌던 우주는 이제 너무나 커졌어. 우주뿐만이 아니라, 나의 저택도 함께 커졌어. 우주가 팽창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참혹한 공간의 확대들. 뭐랄까, 문득 울고 싶어졌지. 이런 기분이라면, 남자라도 울어도 되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결국 울지 않았어. 눈물은 모모가 돌아왔을 때.
혹은 모모가 돌아오지 못하고 홀로 세상의 끝을 맞이해야 할 때.
이윽고 눈이 그치고 밝은 빛이 떠오르면서 나는 중얼거리지. -자, 이제 돌아올 때가 됐잖아.
모모는 돌아오지 않아.
세계는 천천히 멸망해 가.
나를 싣은 이 세계는 끝도 없는 어둠 속을 계속해서 헤엄쳐.
주인을 잃은 어항 속의 붕어가 된 기분으로.
누군가 어항을 두드려 줘, 라고 일기에 써버리지.
세계는 완연히 좁아졌어.
이제 백색 세계의 벽 끝을 보기 위엔 고개를 한참 위로 꺾어야 해. 눈이 아파서 겨울흔은 보이지 않아. 눈이 다시 또 내리기 시작했지만 모모를 싣은 배는 오지 않았고, 겨울흔이 다시 또 보이는 일도 없어. 아무 생각 없이 겨울 아가씨 모모-라고 창문에 입김으로 적었지만 이제 모모의 얼굴도 드문드문 생각날 뿐이야.
하지만 잊을 순 없는거야.
세상은 하얀색, 이라는게 이제 너무 익숙해져서, 더이상 모모의 까만 눈동자도 웃질 않아. 우주를 둘러싼 하얀 벽 꼭대기의 까만 흔적은, 이제 구멍처럼 보여. 아마 밖에서 이곳을 본다면 구멍이 난 하얀 배구공 같겠지.
SETI신호를 보내 모모를 찾아봤지만 답은 없었어.
모모는 돌아오지 않아. 이제 그 정도는 알 수 있어. 그녀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내가 보내버린 것에 대해 실망하고 있을까? 겨울흔가(冬痕家)의 주민은 찾은 걸까? 그곳 사람이 혹시 모모가 Ami란 걸 말해버린게 아닐까? 여러모로 후회가 막심해. 어쩌면 그곳의 생활이 이곳보다 좋아 남아있는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왜 울컥하는 감정이 솟을까.
눈송이 하나가 완연히 눈에 띌 정도로 크게 다가오고 왔어.
모모가 아닐까- 했는데, 그냥 눈이었어. 문제가 있다면 내 배를 박살낼정도로 엄청나게 컸다는거지. 그 얼어붙은 별이 내 배에 스치기만 해도 산산조각 나는 것은 확실했어. 피하는 건 불가능 해. 막을 수도 없어. 버틸 수도 없어. 결국 모모와 세상의 끝을 보는건 불가능하게 됐지만- 같이 손을 붙잡고 극의 막이 내려오는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이대로 먼저 퇴장해도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나는 전망이 가장 좋았던 자리에 앉아, 가장 아끼던 차를 타들고 앉았지.
반대편 자리는 공석이었지만, 의자를 치워버리면 되는거야.
나만의 극의 끝.
눈은 완연히 커지고, 살풋 내 저택에 쌓이더군.
처음엔 엄청난 소리가 났는데, 그것도 저택이 산산조각이 나는 순간 함께 박살나버렸어. 순식간에 숨이 턱 막혔지. 소리가 안들린다는 건, 대기가 없다는 거니까. 질식사의 고통을 상상하며 눈을 감았어. 손을 허우적대며 머리속으로는 망상을- 모모가 여신처럼 나타나 나를 구해주는거야- 피가 역류해. 머리가 터질 듯 아파. 살갗이 얼어붙고, 온몸이 풍선처럼 빵빵하게 부푼 것 같아.
생각보다 고통스러운 끝이라고 생각했어.
눈꺼풀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어.
양부를 처음 만났을 때도 눈이 내렸던 것 같아.
손을 움직이자 잿더미같은 눈이 보풀거리며 공중으로 떠올랐어. 아까같은 통증은 더이상 없어. 숨은 들이마셔지지 않아. 마실 필요도 없어. 그렇게 멍하게 우주에 쏟아지는 눈송이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머리속이 텅비는 느낌이 들었어. 세상은 이제 완전히 백색이야. 하얀 종잇장 같은 모습이야. 이게 세상의 시체, 세상의 혼인걸까?
이제 혼 안에서 내 혼이 호흡해. 실은 애초부터 호흡 할 필요가 없게 만들어져서, 그럴 필요는 없지만 이건 이제 맥박과 같은 느낌이야.
까만 자욱이 남아있던 오래 전과 달리 왠지 여기서 끝날 것 같지 않아. 조만간 이 하얀 알 같은게 빵, 하고 터져서 너저분한 발자국을 남기고 새카만 글자들을 수도없이 새겨대지 않을까, 싶지만 그건 그때가서 나타난 사람들이 해야 할 일.
그보다 난 이만큼이나 좁아진 세상이라면 모모가 있지 않을까 싶었지.
모모가 있거든 반드시 묻고싶은게 있어.
하지만 질문과는 별개로 문득,
양부도, 나도, 모모도- 세상을 사랑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