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어릴 적 봤었던 만화와는 달리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 따위는 없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출근시간 만원 버스와 지하철에 시달리고 치솟는 물가와 몸무게를 걱정하고 있다. 그나마 사람만큼이나 수명이 늘어난 고양이와 개 정도가 공상과학스럽다고 할까? 10년 전이나 어제나 세상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태어난 해에 발견되었던 소울메이트(soulmate) 이론은 세기가 바뀐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소울메이트 이론은 인간이나 동물 심지어 식물 등의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서로 파장이 맞는 상대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이론으로 이 둘이 만날 때 서로의 파장이 합쳐져 육체적, 정신적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여기서 자신과 파장이 맞는 이를 가리켜 소울메이트라 불렀는데, 결국 소울메이트를 찾음으로서 자신에게 플러스 효과가 있고 이것이 외적인 요인까지 변화시켜 인생의 행복이 결정된다는 참으로 낭만적인 과학 이론이었다. 이 다분히 순정만화 같은 이론은 으레 그렇듯이 언제나 수상한 실험결과를 발표하는 영국의 한 기관에서 발표되었다. 처음에는 해외토픽의 한 꼭지로 재미삼아 소개 되었지만 반년도 안 되어 소울메이트를 구분 짓는 특정 호르몬, 평소에는 개인 고유의 특성을 가지고 조용히 지내다가 주인의 소울메이트를 만나게 되면 반응하여 핑크빛 파장을 내뿜는 이른바 Na0호르몬이 발견됨으로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많은 싱글들을 혼란에 빠지게 한 이 호르몬의 이름이 Na0이 된 데에는 이 호르몬을 발견한 박사가 한국 영화 마니아인 탓이었다. 물론, 이론 그 자체만큼이나 우스운 명칭 덕분에 처음에는 학계에서 외면당했었다. 하지만 박사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재빨리 이 호르몬을 이용해 소울메이트를 찾기 위한 Na0호르몬 반응기를 개발하였다. 이는 꿈 많은 사춘기 청소년들과 몇몇 나이든 싱글들의 큰 관심을 받으면서 상업적으로 대성공하였다. 박사는 이 수익을 이용해 학계를 후원하였고 Na0호르몬은 그제야 인정받았다. 이 호르몬 반응기의 이름 또한 박사의 취향이 한껏 반영한 듯 후아유란 이름으로 불렸는데 안타깝게도 소울메이트 이론을 발표, 개발한 박사 본인은 자신의 소울메이트를 찾지 못한 체 여생을 호르몬과 같은 이름의 배우 포스터에 둘러싸인 체 외로이 보냈다고 한다.


아무튼, 이 소울메이트 덕분에 점점 이혼율도 낮아지고 실연에 자살하는 이들도 없어졌으며, 출산율은 높아지는 등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게 변했다고 한다. 이제는 20살이 되자마자 자신의 소울메이트를 찾아 결혼하는 것도 흔한 풍경이 되었으며, 계량화된 다양한 디자인의 후아유를 목에 건 아이들의 모습은 안경 쓴 모습만큼이나 익숙한 모습이 되었다. 그러나 어딜 가나 예외는 있듯이 30이 되어서도, 9번의 연예 끝에도 소울메이트 하나 찾지 못하고 밤마다 허벅지에 바늘 꼽으며 지내는 이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나였다.


이제껏 소울메이트는 커녕 어디 술잔 나눌 남자 하나 못 찾고 이렇게 달 밝은 밤에 고양이와 마주하고 맥주나 나누고 있으려니 참으로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어차피 5년 전 즈음부턴 나는 유전적 기형아요하며 해탈해 있었것만 오늘 아침 뉴스가 새삼스레 이런 유세를 떨게 만들었다. 앵커들마저 소울메이트 커플인 그 뉴스에선 30이 넘어서도 소울메이트를 찾지 못한 이들에게 정부에서 생활 보조금을 지원한다는 이른바 싱글 지원제가 발표되었다. 그 소식만도 환장할 노릇이것만 당시 소식을 전하던 앵커 커플의 동정이 담긴 눈빛은 불속에 기름을 붙는 격이었다. 새까맣게 탄 나를 앞에 두고 회사 직원들은 지나가며 “그래, 뭐니 뭐니 해도 돈이 최고지.” 따위의 위로를 건네곤 했었다. 그렇게 아침부터 너덜너덜해진 가슴을 끌어 앉고 주인은 복창이 터져 술이 어디로 새는지 모르고 들이붓고 있고만 이놈의 동갑내기 고양이는 하늘 높이 뜬 보름달이나 감상하며 하품이나 하고 있다니 주인과는 달리 고고한 멋을 내뿜는 녀석이었다.


이 무심한 듯 쉬크한 멋을 뿜어내는 고양이는 소울메이트 이론과 비슷한 시기에 유행하기 시작한 유전자 변형 애완동물로 사람만큼이나 살 수 있는 녀석이었다. 사실 이런 애완동물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라 과연 사람만큼 살 수 있는지 확인된 바는 없었다. 하지만 내 옆의 이놈이 나랑 동갑임에도 팔팔한 것을 보면 아마 사실이지 않을까 한다. 이 회색 고양이는 당시 유행을 앞서가던 부모님께서 내가 태어나자 평생의 친구를 만들어 주겠다는 생각으로 데려온 녀석이었다. 덕분에 평생을 함께 할 짐승은 생겼지만 어째서인지 평생을 할 인간은 나타나고 있지 않다.


그래도 내 삶의 첫 남자는 이 녀석 덕분에 만났었다. 사실 남자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6살의 꼬마였던 그는 유난히도 동물을 좋아하였고, 당시 질풍노도의 시기였던지 유난히 집을 자주 나가던 이 녀석을 잡다가 만나게 된 것이었다. 6살 아이들이 뭘 알까 할 테지만 유난히도 우리는 잘 통했고 그만큼 잘 어울리기도 하였다. 정말 순수하게 그 아이를 좋아할 무렵 우리의 부모님들은 당시 한창 유행했던 후아유를 사주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그 아이의 후아유가 유치원 선생님의 후아유와 반응하였다. 아직은 소울메이트가 흥밋거리에 지나지 않던 때인지라 주위 사람들은 웃어넘겼었지만 상처받은 6살 여자아이의 마음은 웃음으로 넘길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의 첫사랑은 끝나고 내가 20살이 되었을 무렵 그 남자 아이와 유치원 선생님은 16살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맺어짐으로서 소울메이트의 이론을 증명하였다. 6살의 여자아이가 첫 실연으로 괴로워할 때도 이 고양이 녀석은 지금처럼 내 옆에서 말없이 하늘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중학교 때 만난 두 번째 남자. 육상부 넓이 뛰기 선수였던 그 아이는 소울메이트 따위는 믿지 않는다며 자신의 사랑은 직접 선택하겠다는 태도가 그 외모만큼이나 쿨한 아이였다. 하지만 몰래 후아유를 들고 다니면서 여러 아이들을 만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깨져버렸다. 후에 그 아이가 주로 기록을 내는 모래판 자리에 이 고양이 녀석의 화장실 모래를 까는 소심한 복수로 두 번째 사랑을 마무리 지었다.
고등학교 때 만난 세 번째 아이는 고양이 알레르기로 인해 나를 떠났고, 고양이를 사랑하며 진심으로 소울메이트에 무심한 네 번째 아이는 사실 여자보단 남자에 마음이 더 끌린다는 고백을 하고는 중학교 넓이 뛰기 선수 출신의 남자 아이와 함께 나를 떠났다.


소울메이트와 후아유, Na0호르몬과 이를 발견한 박사를 저주하며 맞은 20살. 대학교에서 소설에서 나올법한 참으로 훈훈한 선배를 만나게 되었다. 술자리에서 지나간 내 인생사를 듣던 그 선배는 커피 CF에나 나올법한 미소를 지으며 이제는 잘 될 것이라는 위로를 건넸다. 그리곤 며칠 후 내 생일날 이제 잘해보라는 말과 함께 후아유를 선물로 줬었다. 우연히도 그게 선배의 후아유에 반응하면서 내 인생에도 희망이 비추는 듯 하였으나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빛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 선배의 후아유가 다른 후배의 후아유와 반응하면서 내 삶은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나 혼자서 진지하게 그래도 내가 퍼스트가 되어야지 하며 중동으로 이민이라도 가야하나 고민할 무렵, 현명하게도 그 선배는 우리들의 후아유를 본사로 가져갔다. 그리하여 결국 선배는 새로운 소울메이트와 떠났고 나에게는 본사로부터 신형 후아유와 심심찮은 위로금만이 남겨졌다. 그 날 고양이 녀석은 최고급 참치 통조림을, 나는 생애 처음으로 양주를 맛보았다.


그렇게 좌절로 연속된 나날들. 생애 처음으로 양주를 맛 본 이후로도 4명의 남자를 만났다. 소심한 등짝이 미워 차버린 7번째 남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진정한 소울메이트를 찾아 나를 떠났다. 그들을 만나면서도 매번 한 두 번씩은 후아유가 Na0호르몬에 반응했지만 어째서인지 결국은 내가 아니었다. 3번째 AS와 보상금을 받을 때는 학회에서 연구 제의까지 받았었다. 하지만 결국 그들도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했고, 마지막 9번째 연애 대상이었던 본사 연구원은 사실 나의 소울메이트는 이 후아유란 기계 자체가 아닐까 하는 가설을 남기고는 떠났었다.


이제는 30살의 문턱에 서서 정부 보상금이나 기다리는 선천적 Na0호르몬 결핍증 환자 혹은 유전적 기형이 되어버렸다. 세계에서 가장 적은 소수민족인 싱글족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고양이와 나란히 앉아 한숨과 한탄 섞인 담배 연기를 뱉을 무렵 익숙한 20세기 말의 노래가 들려 왔다. 후아유가 Na0 호르몬을 감지할 때 나오는 너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그 노래가 말이다. 집안의 생명체라곤 나와 이 고양이 녀석밖에 없는데 이렇게 우렁차게도 노래 소리가 들린다니, 사실 이젠 기계가 미쳤다고 해도 놀랍지 않았다. 여하튼 후아유를 찾아다 앞마당에 고이 묻어 나빌려는 생각으로 돌아봤더니 어느새 고양이 녀석의 목에 걸려있었다. 그게 어째서 녀석의 목에 걸렸는지 보다는 왜 동물에게서 반응하는지가 더 의아했다. 과연 후아유가 나에게서 풍기는 홀아비 냄새를 견디지 못하고 미쳐버린 것일까? 나의 몸에선 Na0호르몬 대신 솔로 전자파라도 나가 모든 후아유를 고장 내기라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평생을 함께한 고양이에게서 너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소리를 듣다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그렇기도 하였다. 평생을 살아온 고양이. 첫 번째 남자 아이가 유치원 선생과 눈 맞을 때도 들려있었고, 두 번째 남자 아이에게는 소중한 화장실 모래를 남기고, 세 번째 아이는 떠나보내고 네 번째 아이는 맺어준 고양이. 그 이후로 누군가 떠날 때마다 나와 함께 이렇게 밤을 지새준 고양이였다. 하기야 후아유가 한두 번 고장 난 것도 아니고 또 미쳐버렸으면 어떠나? 이 녀석만은 나의 곁을 지켜준 것은 사실인데. 아직도 흘러나오는 노래 소리에 당황한 듯한 고양이 녀석의 목에서 후아유를 빼어 꺼주었다. 녀석은 아까의 당황스러움을 그사이 잊어버렸는지 다시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날따라 유난히 밝았던 녀석의 눈을 보고는 그렇게나 들린다는 내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