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마당 - 단편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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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순식간에 정체불명의 가스를 내뿜었다. 사실 그건 과학자들의 분석 결과일 뿐이고, 실제 보기에는 그 기체가 자의식을 가진 것 마냥 벌레들처럼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그렇게 기분 나쁘게 기어 나온 가스는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지구 전체를 덮어버렸다. 주변이 모두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안개가 낀 것처럼 희뿌옇게 변해버렸다. 지구가 허여멀겋게 변해버린 지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세계 언론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세운 가설을 전했다. 각자가 각각 다른 의견을 발설했다. 자기의 의견이 옳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싸움이 시작된 지 또 일주일이 지났다. 세계로 연결된 언론을 통해, 막강한 확장성을 지닌 인터넷을 통해 삽시간에 퍼져나간 소식에 의해 의견은 더욱 더 분산되었다.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고, 따르는 사람들이 있었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자들도 있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러 그들은 결국 모두 같이 싸우는 자가 되었다.
나는 여느 때처럼 6시경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른 시각이지만 한여름이다. 주변이 떠오르고 있는 태양빛을 받아 미묘하게 누르스름한 빛깔로 물들었어야 할 시간이건만, 주변은 온통 희뿌옇기만 했다. 이렇게 되어버린 지도 한 달 정도 지났으니 적응될 때도 되었건만 그렇지 못했고, 도리어 처음 가스를 보았을 때 느낀 불안감과 불쾌감이 날로 늘어가기만 하니 미칠 노릇이었다. 나는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몸을 풀기위해 기지개를 켜고는 닫혀있는 방문으로 눈을 돌렸다. 방문 밖은 바로 거실이었다. 거실에는 나보다 한 시간 정도 먼저 일어나 아침식사 준비를 하는 아내와 마찬가지로 한 시간 쯤 전에 그러니까 5시경에 일어난 아들 녀석이 있을 터였다. 나는 군청색 추리닝 바지와 반팔티를 걸치고는 거실로 나갔다. 문을 열자 시야가 붉게 변했다. 눈이 맛이 갔는가 생각하고 있으니 피비린내가 코끝을 간질였다.
“…….”
입을 열수가 없었다. 입을 벌릴 때마다 여태까지 수도 없이 뻐끔거렸어도 아무 맛도 느낄 수 없었던 가스에서 쇠 맛이 느껴졌다. 호흡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이제껏 수도 없이 킁킁거렸어도 맡을 수 없었던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눈꺼풀을 들어 올릴 때마다 붉은 안개 사이로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히 살아있던 사람 둘의 시체가 보였다.
소파위에 아내와 아들이 같이 뒤엉켜 죽어있었다.
그 광경은 실로 처참했다. 아내는 모가지가 비틀린 채 혓바닥을 길게 늘어뜨리고 뒤집힌 눈깔로 자신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군데군데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빠져있었다. 아니, 머리 가죽 채로 뜯겨져 있었다. 부러져버려 원래 꺾여야할 반대방향으로 접혀진 팔은 시뻘건 식칼을 들고 있었다. 아들은 입에서 피를 흘리며 아내의 몸뚱이 위로 엎어져 있었다. 배가 갈라진 채로 내장이 쏟아지고, 피 칠갑을 한 채 그것을 손으로 부여잡고 있었다. 팔, 다리, 온 몸이 성한 곳이 없이 칼에 찔린 구멍이 수십 곳이 넘었다. 둘은 사투를 벌이다 죽었을 것이리라. 아들이 지 어미의 머리 가죽을 뜯어내고 어미는 제 아들의 몸뚱이에 바람구멍을 냈다. 아들은 결국 어미의 모가지를 비틀었고, 어미는 결국 아들의 배를 갈랐다. 결국 둘 다 사이좋게 죽은 것이다.
나는 당황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째서, 왜, 죽은 것인지. 어째서, 왜, 죽인 것인지. 무엇이 그들의 싸움에 동기가 되었는지. 불씨가 된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지만, 그 고민을 오래도록 할 수는 없었다. 계속해서 느껴지는 붉은빛과 피비린내와 쇠 맛에 정신이 아득히 멀어짐을 느꼈다. 현실감이 없었다. 내 눈앞에서 벌어진 이 상황을 믿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현실감의 부재 탓인지 둘의 시체를 보고 있어도 가족이 죽어 슬프다거나, 무섭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내가 미쳐버린 것인가 하고 생각도 해보았지만, 정신은 멀쩡했다. 최소한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는데 사용된 부분만큼은 정상이라고 판단했다.
“으음…….”
나는 손으로 코를 가린 채 바닥에 고여 있는 핏물을 조심하며 집 밖으로 나갔다. 밖은 엄청나게 더웠다. 여름 태양에 의해 가열된 가스는 더운 날씨를 몇 배나 덥게 만들었다. 바람이 불었지만, 뜨거움은 가라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바람마저 열을 받아 돌아버린 것인지, 바림이 아닌 불덩이가 불어대고 있는 듯 했다. 나는 아침을 먹기 위해 근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죽어! 죽어버려! 죽어! 뒈져버려!”
식당 안에서는 누군가 싸우고 있었다. 그 소리가 주변에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나는 문 앞에 서서 들어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식당 안에서는 깨지는 소리, 부딪히는 소리, 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고 그냥 그 식당을 지나쳐 가기로 했다. 식당을 뒤로하고 몇 걸음 옮겼을 때 유리가 박살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아악!”
아까 욕지거리를 하던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고, 나는 뒤를 돌아 상황을 확인했다. 꽤 큰 덩치의 사내가 식당 문과 함께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사내에게 깔린 유리문은 박살이 나면서 사방으로 튀어있었다. 나는 식당 문 앞에 서있지 않았던 것에 안도하며 멀찌감치 떨어져 그 사내를 바라보았다. 한동안 고통스러워하던 사내는 단숨에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 안으로 사라졌다. 식당 입구에서 피가 쏟아졌다. 다시금 부서지는 소리,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바닥에 나뒹굴었던 사내의 모가지로 추정되는 것이 날아와 부서진 유리문 위에 떨어졌다. 그 얼굴은 무지막지하게 부서져 있었다. 눈 주변은 둔기로 맞은 듯 함몰되어 있었고, 압력을 이기지 못한 눈알이 바깥으로 밀려나와 있었다. 코뼈가 부러져 구십도 정도 휘어 있었고, 아래턱은 부서진 채 바닥을 향해 흘러내렸다. 나는, 괜한 호기심에 식당으로 다가갔다. 식당 안은 바깥에 널브러져있는 머리통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참혹했다. 식당 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는 온 몸에 조리도구를 꽂은 채로 주방통로에 쓰러져 있었고, 식사를 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아줌마는 안면이 뭉그러져버린 두 아이를 끌어안은 채 식탁을 칼처럼 쓰고 있었다. 얼굴은 온통 시뻘건 피로 뒤덮여 있었다. 사건의 주모자로 보이는 사내는 자신이 모가지를 날려버린 사내의 위에 쓰러져 있었다. 끝까지 자기의 할일을 다 했지만, 한쪽 팔이 날아가고 가슴팍을 우산이 뚫고 있는데 살아있을 사람은 없다. 식당 안의 모든 사람들은 죽어있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중 갑자기 어지럼증에 사로잡힌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 내 방에 처박혔다. 내 방으로 가기 위해서 아내와 아들의 시체를 지나쳐야 했지만, 별다른 감흥을 느낄 수는 없었다. 정말로 내가 미쳐버린 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문득 방 바깥에서 서로 껴안고 있을 아내와 아들 녀석을 떠올렸다. 그 상황과 식당에서의 상황이 겹쳐보였다. 서로 죽고 죽이는 참상. 집의 일과 식당의 일은 규모만 조금 달랐을 뿐 같은 맥락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같은 원인에서 출발했을 것이리라. 그런 생각이 들었다. 괴상망측한 생각이라고 생각한 나는 집이나 식당에 관한 일을 잊어버리기 위하여 TV를 켰다. 하지만 TV에서는 뉴스속보가 방송되고 있었다. 그 내용은 참상을 잊어버리게 하기는커녕, 더욱 뚜렷하게 만들어 주었다.
TV속의 영상은 지하철 매표소를 비추고 있었다. 화면 오른쪽에 서 있는 기자 뒤로 구급대원과 경찰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시체를 치우고 있었다. 기자는 마이크를 들고 화면의 오른쪽에 서서 말을 이어갔다.
뉴스가 소개하는 사건은 오늘 오전 6시경 지하철 1호선 서울역에서 약 백 명의 사람들이 서로를 죽여 버린 참극이었다. 사건 발생은 6시가 조금 넘은 시각으로, 사소한 말싸움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교통카드요금을 잘못 충전해준 직원에게 항의하던 회사원 김 모 씨와 직원의 말싸움이 주먹다짐으로 커지면서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말리기 위해 모여들었고, 싸움의 당사자들이 말리던 사람들에게까지 폭력을 행사하는 와중에 커지고 커져서 모두 사망하는 참혹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부연 설명이 뒤따랐다.
TV는 곧 정규방송을 하기 시작했지만, 계속해서 발생하는 사건들에 맞춰 방송되는 긴급속보들은 시단이 지날수록 정규방송보다 더 많은 시간을 차지하며 TV를 잠식해갔다. 방송이 거듭될수록 내 머릿속도 복잡해져만 갔다. 서로 죽고 죽이는 사람들, 소규모, 대규모, 전 세계적으로 시작된 참극. 모든 것이 다른 사건 같았지만, 공통점이 존재했다. 항상 처음에는 사소한 언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말싸움이던 것이 주먹다짐이 되고, 주먹다짐이던 것이 서로에게 칼을 휘두르고, 총질을 해대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째서 사람이란 것들이 이렇게 감정적이 된 것일까.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지금 존재하고 있는 가스를 원인으로 가정하고 있을 뿐이었다. 불에도 타오르지 않고, 물에도 희석되지 않는 완벽하게 새로운 존재인 이 가스를 사람들이 마시는 순간 신경계에 영향을 미쳐 사람들이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나도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스를 마시면 미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가스를 제거하면 되는 것이다.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고, 누구라고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이었지만, 아무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가스에 중독 되어버린 세계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마지막 남은 종결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인류멸망.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두 달 동안 계속되었고, 그 이후로도 계속되고 있는 살인은 도시를 송두리째 뒤집어 전쟁 중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다. 나는 도시를 탐험하며 주인 없는 가게에서 훔쳐낸 식량으로 겨우겨우 생활하고 있었다. 중간 중간 사람들을 만났지만, 곧 헤어져서 며칠 뒤에 시체가 된 모습으로 다시 만나곤 했다. 그들도 가스를 마셨고, 마찬가지로 미쳐버렸고,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서로를 죽였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한사람도 죽이지 않았다. 나만이 정상인 것인지, 정상이 아니기 때문에 가스를 마시고도 이전과 똑같은 생활을 하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간에 지금은 나 혼자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확실했다. 그것은 내가 정상에 가깝다는 것을 의미했다. 기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미쳐버린 세계에서 나 혼자만이 정상이라는 것은 나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차라리 미쳐서 죽어버리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과 나 하나라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쉴 새 없이 부딪히며 머릿속을 초토화 시키고 있었다. 나는 타인들과 다른 쪽으로 미쳐가고 있었다.
“콜록, 콜록.”
정신만이 문제가 아니라 몸도 문제였다. 콘크리트 바닥에서 유통기한이 언제 지났는지 알 수 없는 빵을 먹으며 생활하는데 몸이 성할 리가 없었다. 정확하게 어디가 문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기침이 잦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병을 얻었음에도 나의 생활패턴은 변하지 않았다. 일어나면 끼니를 때우고, 근처를 돌며 식량을 확보하고, 점심을 먹고, 주변을 체크하고 책을 읽다가 아무 건물이나 들어가 잠을 청하기를 반복했다. 영양가 없는 생활패턴은 내 몸 또한 영양가 없는 몸뚱이로 만들었다. 도와줄 것은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서 망가진 몸을 되돌리는 방법 따윈 찾을 수조차 없었다. 나는 그저 순응한 채 이전과 같은 삶을 영위해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음식을 구하기 위해 편의점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유통기한이 길기 때문에 비축용으로 모으는 통조림들을 뒤적이고 있을 때 편의점 입구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소리가 난 쪽을 보니 아직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소녀가 서 있었다. 그녀는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억지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안으로 들어오라고 권유했지만, 소녀는 아직 나를 믿지 못하는지 편의점 안을 둘러보며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통조림 몇 개를 골라 소녀를 향해서 굴렸다. 통조림을 받은 소녀는 그제야 조심조심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겨우 소녀의 전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녀는 절뚝거리고 있었다. 소녀는 피와 먼지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머리에서 시작된 피가 볼을 타고 흘러있었다. 어깨에 묶은 옷이 검붉게 물들어 있었고 힘없이 늘어진 팔 끝까지 피가 흘러 있었다. 목 부근에도, 옆구리에도, 다리에도 온통 크고 작은 상처들이 즐비했다. 큰 사건에 휘말렸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소녀가 가까이 다가와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한순간에 긴장이 풀린 탓인지 스러지듯이 주저앉아 버렸다. 소녀는 편의점 바닥에 주저앉아 지금까지 자신이 겪은 일을 말해 주었다. 자신은 여기로부터 별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학교에 다니는데, 두 달쯤 전에 자기를 제하고는 모두 죽어버렸다는 것. 점심시간에 발생한 난투극 사이로 쫓기듯 도망쳐 나온 뒤로 계속 방황하고 있다는 것. 집에도 가보았지만, 아무도 없었고, 결국 다시 집을 나왔다는 것. 그 이후로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려하는 통에 도망치고, 숨어 다니면서 많이 힘든 일들을 겪었다는 것. 아직 학생일 뿐인 소녀가 겪기에는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일들을 겪은 것이다. 나는 소녀에게서 측은함을 느끼는 동시에 동질감을 느꼈다. 그렇게 많은 사건에 휘말리면서도 소녀는 정상적인 사고를 잃지 않았다. 타인들이 미쳐감에도 소녀는 홀로 정상으로 남아 여기까지 왔다. 드디어 나 이외의 정상인을 만난 것이다. 나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나는 소녀에게 여태까지 내가 겪은 일을 모두 털어놓았다. 어느 날 깨어보니 아내와 아들이 죽어있었던 것. 식당으로 갔지만 싸움 통에 다시 집으로 돌아온 것. TV를 통해 이 사건이 커다란 무언가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눈치 챈 것. 그 이후에 다시 집을 나와 떠돌아다닌 것. 떠돌아다니는 중에도 크고 작은 싸움에 휘말렸던 것. 모두 털어놓았다. 서로 겪은 일을 털어놓는 동안 우리는 서로 신뢰할 수 있는 동료가 되어있었다.
한동안 미쳐가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던 우리는 통조림을 챙겨들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우선 소녀가 씻을 장소를 마련해 주고자 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 물이 나오는 곳을 찾기란 하늘의 별을 따는 것 보다 더 어려웠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다시 편의점으로 들어가 뒷문을 열고 창고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한쪽에 쌓여있는 생수 다섯 박스 정도를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소녀에게 우선 몸을 씻으라고 권한 뒤에 상처를 소독할만한 물건을 찾아올 테니 잠시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다. 소녀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나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온 나는 근처를 돌며 약국을 찾았다. 3분정도 걸어가니 꽤 큰 약국이 나왔다. 나는 반쯤 떨어져나간 유리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약국 안에서는 두 사람의 시체가 있었다. 흰색 가운을 입은 시체와 낡아빠진 옷을 걸친 시체. 약국의 주인과 구걸하러온 노숙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둘은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사이좋게 엎어져 있었다. 노숙자의 시체는 상태가 양호한 편이었지만, 약사의 목은 오른쪽으로 180도 돌아가 있었다. 아내의 시체가 떠올라 기분이 나빠졌다. 두 달이나 지났지만, 언제나 아내와 아들의 모습은 내 머릿속을 맴돌며 나를 괴롭혔다. 나는 최대한 약사의 모습을 보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재빨리 소독약과 붕대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꽤 번화한 거리로 옷가게가 많이 있었다. 소녀의 너덜너덜해진 옷이 떠올랐다. 몇 개 가져가면 소녀가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한 나는 적당해 보이는 가게로 들어가 상의와 하의 몇 벌씩을 챙겨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는 곧장 편의점으로 돌아갔다. 창고 안에서는 아직 소녀가 몸을 씻고 있었다. 나는 문을 살짝 열고 소독약품과 붕대를 밀어 넣었다. 소녀는 그것을 가져갔다. 다시 문이 잠겼다.
“조금 쉬어볼까…….”
나는 벽에 기대고 눈을 감았다. 눈앞에 이상한 광경이 펼쳐졌다. 나는 우주에 홀로 떠다니고 있었고, 나 이외에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사람냄새가 나는 것이라고는 그저 인간이 쏘아올린 우주에 대한 동경의 상징, 고철이 된 인공위성의 잔해와 돌아오는 것에 실패한 우주왕복선의 흉측한 모습뿐이었다. 나는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태양과 몇몇 행성들이 보이고 지구가 눈앞에 있었다. 나는 지구 주변을 돌고 있는 위성, 달 위에 있었다. 발밑으로 달의 표면이 보였다. 나는 진정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돌고 돌며 주변을 보았다. 그래봐야 보이는 것에 변함은 없었지만, 여기서 진정할 수 있는 녀석이 있다면 인간이 아닐 것이었다. 갑작스럽게 그리고 웅장하게, 거대하지만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
분명히 무언가 말하는 소리였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세계 각국의 언어가 동시에 들려오는 탓에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최대한 집중하려고 노력했지만, 헛수고였다.
“이봐! 한글로 얘기해!”
나는 소리쳤다. 여기가 어디든지 간에 누가 말하고 있는 것이든지 간에 이쪽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은 내 말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내가 소리침과 동시에 상대방의 말소리가 멈췄다. 잠시 동안의 정적 뒤에 다시금 말소리가 들려왔고,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고맙게도 한글로 얘기해주고 있었다. 나는 잠시 동안 그의 말을 경청했다.
“내가 이렇게 당신을 바깥에 부른 것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이다. 인류는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러서 내가 감당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더불어 당신들에 대한 흥미도 사라졌다. 나는 이제 현생 인류를 포기하려고 한다. 너희들은 때가되면 죽고, 다른 종의 먹이가 되는 것을 거부했다. 먹이 사슬을 뿌리부터 뒤흔들어 버리고 그 최상층에 군림하기 시작했다. 수백, 수천, 당신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것까지 합치면 수백만의 종이 멸종했다. 인간들의 실수로 세계는 뒤집어졌다. 하지만 당신들은 그 실수를 인지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나는 당신들에게 경고를 가했다. 화산을 폭발시키고, 해일, 폭풍을 만들고, 지진을 일으켰다. 오존층에 구멍을 내는 과감한 시도까지 하면서 당신들을 바꾸어놓기 위하여 노력했다. 그 때 까지만 해도 아직 당신들을 포기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신들 현생인류는 계속해서 세계를 파괴하는 행위를 자행했다. 죽이고, 빼앗고, 그것을 계속해서 되풀이 되도록 했다. 나는 결국 당신들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더 이상 바꾸어야 하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내가 내린 결론은 현생인류인 당신들을 없애버리고 새로운 인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현생인류를 모두 없애버려야 했다. 하지만 이미 지난번처럼 자연재해로는 모두 없앨 수 없을 정도로 개체수가 많아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가스를 만들었다. 마시면 사소한 싸움에도 살의를 느끼게 되는 가스였다. 잠복 기간은 한 달. 나는 그사이에 당신들이 눈치 채 주기를 바란 것이다. 마지막 미련이었다. 결국 당신들이 눈치 채지 못한 채로 한 달이 지났고, 가스에 의한 효과는 서서히 당신들을 잠식해갔다. 당신들은 서로 죽이기 시작했고, 그 속도는 엄청나게 빨라서 두 달 정도 지난 지금 현생 인류의 개체 수는 1000이 되지 않는다. 나는 그중에 두 명을 선택했다.”
그의 말이 멈추었다. 말의 두서가 없었지만 그럭저럭 이해할 수는 있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지금 내와 소녀가 있는 곳에 사람이 남아있을 확률은 극히 적었다. 전 세계에서 천명이라니, 엄청나게 적었다. 두 달 전만 해도 6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남은 것이 고작 천 명이라니. 그 중에 두 명을 선택했다는 것도 모를 일이었다. 전부 멸망시켜버리겠다고 하다가 이제는 두 명을 선택했다니. 나는 그의 말이 멈춘 틈을 타서 그에게 질문했다.
“이전처럼 없앨 수 없다니, 그럼 이전에도 인류가 멸망한 적이 있었다는 거야? 두 명을 선택했다니 무슨 소리지? 그리고 당신 누구야?”
잠시 뒤에 그가 대답했다.
“두 명을 선택한다는 것은 그 두 명을 다음 인류의 출발점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그 두 명에서부터 출발된 인류는 다시 개체수를 늘려가고, 지금과는 다른 방향으로, 또 그 이전과도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인류가 멸망하고 발전하는 것은 다섯 번이 있었다. 그 중 당신들의 전 인류 오메가이자 현생인류의 알파인 그 두 명을 당신들은 아담과 이브, 혹은 아담과 하와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 이 말의 의미는 인류가 발전하고 멸망하는 것이 몇 번이고 되풀이 되고 있고, 지금 이 상황은 멸망하는 과정. 그리고 남은 천 명 중에서 선택되는 두 명이 다음 인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 도대체 누구지?”
나는 소리쳤다. 인류를 멸망시킬만한 힘을 가진 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있었지만, 확실히 하기 위해 나는 그에게 질문했다.
“나는, 당신들이 신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것이자, 당신들이 살아가는 땅, 지구다.”
그의 말이 끝난 순간 우주가 무너졌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밑을 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그 어둠 속으로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잠에서 깨어났다.
잠에서 깨니 소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내가 얼마나 잤느냐고 물었다. 소녀는 내가 잠든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잠꼬대가 심해서 걱정했다고 한다. 계속해서 비명을 지르고, 몸을 뒤척였다고 했다. 나는 소녀에게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잠시 가만히 서서 꿈속에서 들은 말을 되뇌었다. 마지막 남은 천 명 중 두 명.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그 두 명이라는 것은 나와 이 소녀인 것이다. 우리는 지구의 의지에 의한 멸망 위에서 유일한 정상인 이었고, 남자와 여자였다. 이보다 더 완벽한 상황이 만들어 질 수는 없었다. 지구는 우리를 인위적으로 만나게 한 것이다. 갑작스럽게 우연히 만난 듯 보이지만 그것은 모두 지구의 의지였던 것이다. 나는 사실을 깨달았다. 진리를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이때까지의 일을 모두 적기로 했다.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글을 적어 후세에 물려줄 생각이다. 모두가 자연과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모두가 자연의 섭리를 깨뜨리지 않도록, 현생 인류가 저지른 일들을 모두 적을 것이다.
한 남자가 미친 듯이 중얼거리며 콘크리트 바닥에 주저앉아 A4용지 위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한 소녀가 남자에게로 다가왔다.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남자에게 그만두라고 말했다. 하지만 남자는 듣지 않았다. 오히려 남자는 소녀에게 화를 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남자는 계속해서 자기를 걱정하는 소녀를 폭행하기 시작했다. 주먹질을 하고, 발로 차고, 욕설을 내뱉었다. 사내가 소리를 지를 때마다 소녀의 얼굴이 뭉개지고, 뼈가 부러지고, 피가 흘렀다. 남자는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녀를 폭행했다. 소녀의 치아가 부러지고, 코가 뭉그러지고, 눈두덩은 부풀어 올랐다. 봉긋 솟아있던 가슴이 터지고, 팔이 뒤틀리고, 다리가 부서졌다. 소녀는 입에서, 귀에서, 코에서, 온 몸에서 피를 쏟으며 쓰러져 죽었다. 남자는 자신을 걱정해주는 사람을 짓밟아 죽여 버렸다. 자신의 일에 걸림돌을 제거한 사내는 다시 주저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자신이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며 미친 듯이 중얼거렸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났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 남자는 굶어죽었다. 자신이 쓴 글 위에 피를 토하며 쓰러져 죽었다. 그리고 또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이런…….”
인류 최후의 사내는 가만히 선 채로 시체 두 구를 보고 있었다.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썩어문드러져 버렸지만, 분명 여자와 남자의 시체였다. 인류 최후의 여자가 되었어야 할 여성의 시체와 인류 최후의 적인 남자의 시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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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 losnaHe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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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쓴 것 중 하나 올려봅니다.
이렇게 올리면 되나요?
나는 여느 때처럼 6시경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른 시각이지만 한여름이다. 주변이 떠오르고 있는 태양빛을 받아 미묘하게 누르스름한 빛깔로 물들었어야 할 시간이건만, 주변은 온통 희뿌옇기만 했다. 이렇게 되어버린 지도 한 달 정도 지났으니 적응될 때도 되었건만 그렇지 못했고, 도리어 처음 가스를 보았을 때 느낀 불안감과 불쾌감이 날로 늘어가기만 하니 미칠 노릇이었다. 나는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몸을 풀기위해 기지개를 켜고는 닫혀있는 방문으로 눈을 돌렸다. 방문 밖은 바로 거실이었다. 거실에는 나보다 한 시간 정도 먼저 일어나 아침식사 준비를 하는 아내와 마찬가지로 한 시간 쯤 전에 그러니까 5시경에 일어난 아들 녀석이 있을 터였다. 나는 군청색 추리닝 바지와 반팔티를 걸치고는 거실로 나갔다. 문을 열자 시야가 붉게 변했다. 눈이 맛이 갔는가 생각하고 있으니 피비린내가 코끝을 간질였다.
“…….”
입을 열수가 없었다. 입을 벌릴 때마다 여태까지 수도 없이 뻐끔거렸어도 아무 맛도 느낄 수 없었던 가스에서 쇠 맛이 느껴졌다. 호흡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이제껏 수도 없이 킁킁거렸어도 맡을 수 없었던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눈꺼풀을 들어 올릴 때마다 붉은 안개 사이로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히 살아있던 사람 둘의 시체가 보였다.
소파위에 아내와 아들이 같이 뒤엉켜 죽어있었다.
그 광경은 실로 처참했다. 아내는 모가지가 비틀린 채 혓바닥을 길게 늘어뜨리고 뒤집힌 눈깔로 자신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군데군데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빠져있었다. 아니, 머리 가죽 채로 뜯겨져 있었다. 부러져버려 원래 꺾여야할 반대방향으로 접혀진 팔은 시뻘건 식칼을 들고 있었다. 아들은 입에서 피를 흘리며 아내의 몸뚱이 위로 엎어져 있었다. 배가 갈라진 채로 내장이 쏟아지고, 피 칠갑을 한 채 그것을 손으로 부여잡고 있었다. 팔, 다리, 온 몸이 성한 곳이 없이 칼에 찔린 구멍이 수십 곳이 넘었다. 둘은 사투를 벌이다 죽었을 것이리라. 아들이 지 어미의 머리 가죽을 뜯어내고 어미는 제 아들의 몸뚱이에 바람구멍을 냈다. 아들은 결국 어미의 모가지를 비틀었고, 어미는 결국 아들의 배를 갈랐다. 결국 둘 다 사이좋게 죽은 것이다.
나는 당황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째서, 왜, 죽은 것인지. 어째서, 왜, 죽인 것인지. 무엇이 그들의 싸움에 동기가 되었는지. 불씨가 된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지만, 그 고민을 오래도록 할 수는 없었다. 계속해서 느껴지는 붉은빛과 피비린내와 쇠 맛에 정신이 아득히 멀어짐을 느꼈다. 현실감이 없었다. 내 눈앞에서 벌어진 이 상황을 믿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현실감의 부재 탓인지 둘의 시체를 보고 있어도 가족이 죽어 슬프다거나, 무섭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내가 미쳐버린 것인가 하고 생각도 해보았지만, 정신은 멀쩡했다. 최소한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는데 사용된 부분만큼은 정상이라고 판단했다.
“으음…….”
나는 손으로 코를 가린 채 바닥에 고여 있는 핏물을 조심하며 집 밖으로 나갔다. 밖은 엄청나게 더웠다. 여름 태양에 의해 가열된 가스는 더운 날씨를 몇 배나 덥게 만들었다. 바람이 불었지만, 뜨거움은 가라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바람마저 열을 받아 돌아버린 것인지, 바림이 아닌 불덩이가 불어대고 있는 듯 했다. 나는 아침을 먹기 위해 근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죽어! 죽어버려! 죽어! 뒈져버려!”
식당 안에서는 누군가 싸우고 있었다. 그 소리가 주변에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나는 문 앞에 서서 들어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식당 안에서는 깨지는 소리, 부딪히는 소리, 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고 그냥 그 식당을 지나쳐 가기로 했다. 식당을 뒤로하고 몇 걸음 옮겼을 때 유리가 박살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아악!”
아까 욕지거리를 하던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고, 나는 뒤를 돌아 상황을 확인했다. 꽤 큰 덩치의 사내가 식당 문과 함께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사내에게 깔린 유리문은 박살이 나면서 사방으로 튀어있었다. 나는 식당 문 앞에 서있지 않았던 것에 안도하며 멀찌감치 떨어져 그 사내를 바라보았다. 한동안 고통스러워하던 사내는 단숨에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 안으로 사라졌다. 식당 입구에서 피가 쏟아졌다. 다시금 부서지는 소리,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바닥에 나뒹굴었던 사내의 모가지로 추정되는 것이 날아와 부서진 유리문 위에 떨어졌다. 그 얼굴은 무지막지하게 부서져 있었다. 눈 주변은 둔기로 맞은 듯 함몰되어 있었고, 압력을 이기지 못한 눈알이 바깥으로 밀려나와 있었다. 코뼈가 부러져 구십도 정도 휘어 있었고, 아래턱은 부서진 채 바닥을 향해 흘러내렸다. 나는, 괜한 호기심에 식당으로 다가갔다. 식당 안은 바깥에 널브러져있는 머리통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참혹했다. 식당 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는 온 몸에 조리도구를 꽂은 채로 주방통로에 쓰러져 있었고, 식사를 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아줌마는 안면이 뭉그러져버린 두 아이를 끌어안은 채 식탁을 칼처럼 쓰고 있었다. 얼굴은 온통 시뻘건 피로 뒤덮여 있었다. 사건의 주모자로 보이는 사내는 자신이 모가지를 날려버린 사내의 위에 쓰러져 있었다. 끝까지 자기의 할일을 다 했지만, 한쪽 팔이 날아가고 가슴팍을 우산이 뚫고 있는데 살아있을 사람은 없다. 식당 안의 모든 사람들은 죽어있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중 갑자기 어지럼증에 사로잡힌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 내 방에 처박혔다. 내 방으로 가기 위해서 아내와 아들의 시체를 지나쳐야 했지만, 별다른 감흥을 느낄 수는 없었다. 정말로 내가 미쳐버린 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문득 방 바깥에서 서로 껴안고 있을 아내와 아들 녀석을 떠올렸다. 그 상황과 식당에서의 상황이 겹쳐보였다. 서로 죽고 죽이는 참상. 집의 일과 식당의 일은 규모만 조금 달랐을 뿐 같은 맥락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같은 원인에서 출발했을 것이리라. 그런 생각이 들었다. 괴상망측한 생각이라고 생각한 나는 집이나 식당에 관한 일을 잊어버리기 위하여 TV를 켰다. 하지만 TV에서는 뉴스속보가 방송되고 있었다. 그 내용은 참상을 잊어버리게 하기는커녕, 더욱 뚜렷하게 만들어 주었다.
TV속의 영상은 지하철 매표소를 비추고 있었다. 화면 오른쪽에 서 있는 기자 뒤로 구급대원과 경찰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시체를 치우고 있었다. 기자는 마이크를 들고 화면의 오른쪽에 서서 말을 이어갔다.
뉴스가 소개하는 사건은 오늘 오전 6시경 지하철 1호선 서울역에서 약 백 명의 사람들이 서로를 죽여 버린 참극이었다. 사건 발생은 6시가 조금 넘은 시각으로, 사소한 말싸움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교통카드요금을 잘못 충전해준 직원에게 항의하던 회사원 김 모 씨와 직원의 말싸움이 주먹다짐으로 커지면서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말리기 위해 모여들었고, 싸움의 당사자들이 말리던 사람들에게까지 폭력을 행사하는 와중에 커지고 커져서 모두 사망하는 참혹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부연 설명이 뒤따랐다.
TV는 곧 정규방송을 하기 시작했지만, 계속해서 발생하는 사건들에 맞춰 방송되는 긴급속보들은 시단이 지날수록 정규방송보다 더 많은 시간을 차지하며 TV를 잠식해갔다. 방송이 거듭될수록 내 머릿속도 복잡해져만 갔다. 서로 죽고 죽이는 사람들, 소규모, 대규모, 전 세계적으로 시작된 참극. 모든 것이 다른 사건 같았지만, 공통점이 존재했다. 항상 처음에는 사소한 언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말싸움이던 것이 주먹다짐이 되고, 주먹다짐이던 것이 서로에게 칼을 휘두르고, 총질을 해대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째서 사람이란 것들이 이렇게 감정적이 된 것일까.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지금 존재하고 있는 가스를 원인으로 가정하고 있을 뿐이었다. 불에도 타오르지 않고, 물에도 희석되지 않는 완벽하게 새로운 존재인 이 가스를 사람들이 마시는 순간 신경계에 영향을 미쳐 사람들이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나도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스를 마시면 미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가스를 제거하면 되는 것이다.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고, 누구라고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이었지만, 아무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가스에 중독 되어버린 세계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마지막 남은 종결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인류멸망.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두 달 동안 계속되었고, 그 이후로도 계속되고 있는 살인은 도시를 송두리째 뒤집어 전쟁 중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다. 나는 도시를 탐험하며 주인 없는 가게에서 훔쳐낸 식량으로 겨우겨우 생활하고 있었다. 중간 중간 사람들을 만났지만, 곧 헤어져서 며칠 뒤에 시체가 된 모습으로 다시 만나곤 했다. 그들도 가스를 마셨고, 마찬가지로 미쳐버렸고,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서로를 죽였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한사람도 죽이지 않았다. 나만이 정상인 것인지, 정상이 아니기 때문에 가스를 마시고도 이전과 똑같은 생활을 하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간에 지금은 나 혼자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확실했다. 그것은 내가 정상에 가깝다는 것을 의미했다. 기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미쳐버린 세계에서 나 혼자만이 정상이라는 것은 나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차라리 미쳐서 죽어버리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과 나 하나라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쉴 새 없이 부딪히며 머릿속을 초토화 시키고 있었다. 나는 타인들과 다른 쪽으로 미쳐가고 있었다.
“콜록, 콜록.”
정신만이 문제가 아니라 몸도 문제였다. 콘크리트 바닥에서 유통기한이 언제 지났는지 알 수 없는 빵을 먹으며 생활하는데 몸이 성할 리가 없었다. 정확하게 어디가 문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기침이 잦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병을 얻었음에도 나의 생활패턴은 변하지 않았다. 일어나면 끼니를 때우고, 근처를 돌며 식량을 확보하고, 점심을 먹고, 주변을 체크하고 책을 읽다가 아무 건물이나 들어가 잠을 청하기를 반복했다. 영양가 없는 생활패턴은 내 몸 또한 영양가 없는 몸뚱이로 만들었다. 도와줄 것은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서 망가진 몸을 되돌리는 방법 따윈 찾을 수조차 없었다. 나는 그저 순응한 채 이전과 같은 삶을 영위해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음식을 구하기 위해 편의점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유통기한이 길기 때문에 비축용으로 모으는 통조림들을 뒤적이고 있을 때 편의점 입구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소리가 난 쪽을 보니 아직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소녀가 서 있었다. 그녀는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억지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안으로 들어오라고 권유했지만, 소녀는 아직 나를 믿지 못하는지 편의점 안을 둘러보며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통조림 몇 개를 골라 소녀를 향해서 굴렸다. 통조림을 받은 소녀는 그제야 조심조심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겨우 소녀의 전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녀는 절뚝거리고 있었다. 소녀는 피와 먼지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머리에서 시작된 피가 볼을 타고 흘러있었다. 어깨에 묶은 옷이 검붉게 물들어 있었고 힘없이 늘어진 팔 끝까지 피가 흘러 있었다. 목 부근에도, 옆구리에도, 다리에도 온통 크고 작은 상처들이 즐비했다. 큰 사건에 휘말렸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소녀가 가까이 다가와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한순간에 긴장이 풀린 탓인지 스러지듯이 주저앉아 버렸다. 소녀는 편의점 바닥에 주저앉아 지금까지 자신이 겪은 일을 말해 주었다. 자신은 여기로부터 별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학교에 다니는데, 두 달쯤 전에 자기를 제하고는 모두 죽어버렸다는 것. 점심시간에 발생한 난투극 사이로 쫓기듯 도망쳐 나온 뒤로 계속 방황하고 있다는 것. 집에도 가보았지만, 아무도 없었고, 결국 다시 집을 나왔다는 것. 그 이후로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려하는 통에 도망치고, 숨어 다니면서 많이 힘든 일들을 겪었다는 것. 아직 학생일 뿐인 소녀가 겪기에는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일들을 겪은 것이다. 나는 소녀에게서 측은함을 느끼는 동시에 동질감을 느꼈다. 그렇게 많은 사건에 휘말리면서도 소녀는 정상적인 사고를 잃지 않았다. 타인들이 미쳐감에도 소녀는 홀로 정상으로 남아 여기까지 왔다. 드디어 나 이외의 정상인을 만난 것이다. 나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나는 소녀에게 여태까지 내가 겪은 일을 모두 털어놓았다. 어느 날 깨어보니 아내와 아들이 죽어있었던 것. 식당으로 갔지만 싸움 통에 다시 집으로 돌아온 것. TV를 통해 이 사건이 커다란 무언가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눈치 챈 것. 그 이후에 다시 집을 나와 떠돌아다닌 것. 떠돌아다니는 중에도 크고 작은 싸움에 휘말렸던 것. 모두 털어놓았다. 서로 겪은 일을 털어놓는 동안 우리는 서로 신뢰할 수 있는 동료가 되어있었다.
한동안 미쳐가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던 우리는 통조림을 챙겨들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우선 소녀가 씻을 장소를 마련해 주고자 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 물이 나오는 곳을 찾기란 하늘의 별을 따는 것 보다 더 어려웠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다시 편의점으로 들어가 뒷문을 열고 창고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한쪽에 쌓여있는 생수 다섯 박스 정도를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소녀에게 우선 몸을 씻으라고 권한 뒤에 상처를 소독할만한 물건을 찾아올 테니 잠시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다. 소녀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나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온 나는 근처를 돌며 약국을 찾았다. 3분정도 걸어가니 꽤 큰 약국이 나왔다. 나는 반쯤 떨어져나간 유리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약국 안에서는 두 사람의 시체가 있었다. 흰색 가운을 입은 시체와 낡아빠진 옷을 걸친 시체. 약국의 주인과 구걸하러온 노숙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둘은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사이좋게 엎어져 있었다. 노숙자의 시체는 상태가 양호한 편이었지만, 약사의 목은 오른쪽으로 180도 돌아가 있었다. 아내의 시체가 떠올라 기분이 나빠졌다. 두 달이나 지났지만, 언제나 아내와 아들의 모습은 내 머릿속을 맴돌며 나를 괴롭혔다. 나는 최대한 약사의 모습을 보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재빨리 소독약과 붕대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꽤 번화한 거리로 옷가게가 많이 있었다. 소녀의 너덜너덜해진 옷이 떠올랐다. 몇 개 가져가면 소녀가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한 나는 적당해 보이는 가게로 들어가 상의와 하의 몇 벌씩을 챙겨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는 곧장 편의점으로 돌아갔다. 창고 안에서는 아직 소녀가 몸을 씻고 있었다. 나는 문을 살짝 열고 소독약품과 붕대를 밀어 넣었다. 소녀는 그것을 가져갔다. 다시 문이 잠겼다.
“조금 쉬어볼까…….”
나는 벽에 기대고 눈을 감았다. 눈앞에 이상한 광경이 펼쳐졌다. 나는 우주에 홀로 떠다니고 있었고, 나 이외에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사람냄새가 나는 것이라고는 그저 인간이 쏘아올린 우주에 대한 동경의 상징, 고철이 된 인공위성의 잔해와 돌아오는 것에 실패한 우주왕복선의 흉측한 모습뿐이었다. 나는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태양과 몇몇 행성들이 보이고 지구가 눈앞에 있었다. 나는 지구 주변을 돌고 있는 위성, 달 위에 있었다. 발밑으로 달의 표면이 보였다. 나는 진정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돌고 돌며 주변을 보았다. 그래봐야 보이는 것에 변함은 없었지만, 여기서 진정할 수 있는 녀석이 있다면 인간이 아닐 것이었다. 갑작스럽게 그리고 웅장하게, 거대하지만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
분명히 무언가 말하는 소리였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세계 각국의 언어가 동시에 들려오는 탓에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최대한 집중하려고 노력했지만, 헛수고였다.
“이봐! 한글로 얘기해!”
나는 소리쳤다. 여기가 어디든지 간에 누가 말하고 있는 것이든지 간에 이쪽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은 내 말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내가 소리침과 동시에 상대방의 말소리가 멈췄다. 잠시 동안의 정적 뒤에 다시금 말소리가 들려왔고,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고맙게도 한글로 얘기해주고 있었다. 나는 잠시 동안 그의 말을 경청했다.
“내가 이렇게 당신을 바깥에 부른 것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이다. 인류는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러서 내가 감당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더불어 당신들에 대한 흥미도 사라졌다. 나는 이제 현생 인류를 포기하려고 한다. 너희들은 때가되면 죽고, 다른 종의 먹이가 되는 것을 거부했다. 먹이 사슬을 뿌리부터 뒤흔들어 버리고 그 최상층에 군림하기 시작했다. 수백, 수천, 당신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것까지 합치면 수백만의 종이 멸종했다. 인간들의 실수로 세계는 뒤집어졌다. 하지만 당신들은 그 실수를 인지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나는 당신들에게 경고를 가했다. 화산을 폭발시키고, 해일, 폭풍을 만들고, 지진을 일으켰다. 오존층에 구멍을 내는 과감한 시도까지 하면서 당신들을 바꾸어놓기 위하여 노력했다. 그 때 까지만 해도 아직 당신들을 포기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신들 현생인류는 계속해서 세계를 파괴하는 행위를 자행했다. 죽이고, 빼앗고, 그것을 계속해서 되풀이 되도록 했다. 나는 결국 당신들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더 이상 바꾸어야 하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내가 내린 결론은 현생인류인 당신들을 없애버리고 새로운 인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현생인류를 모두 없애버려야 했다. 하지만 이미 지난번처럼 자연재해로는 모두 없앨 수 없을 정도로 개체수가 많아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가스를 만들었다. 마시면 사소한 싸움에도 살의를 느끼게 되는 가스였다. 잠복 기간은 한 달. 나는 그사이에 당신들이 눈치 채 주기를 바란 것이다. 마지막 미련이었다. 결국 당신들이 눈치 채지 못한 채로 한 달이 지났고, 가스에 의한 효과는 서서히 당신들을 잠식해갔다. 당신들은 서로 죽이기 시작했고, 그 속도는 엄청나게 빨라서 두 달 정도 지난 지금 현생 인류의 개체 수는 1000이 되지 않는다. 나는 그중에 두 명을 선택했다.”
그의 말이 멈추었다. 말의 두서가 없었지만 그럭저럭 이해할 수는 있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지금 내와 소녀가 있는 곳에 사람이 남아있을 확률은 극히 적었다. 전 세계에서 천명이라니, 엄청나게 적었다. 두 달 전만 해도 6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남은 것이 고작 천 명이라니. 그 중에 두 명을 선택했다는 것도 모를 일이었다. 전부 멸망시켜버리겠다고 하다가 이제는 두 명을 선택했다니. 나는 그의 말이 멈춘 틈을 타서 그에게 질문했다.
“이전처럼 없앨 수 없다니, 그럼 이전에도 인류가 멸망한 적이 있었다는 거야? 두 명을 선택했다니 무슨 소리지? 그리고 당신 누구야?”
잠시 뒤에 그가 대답했다.
“두 명을 선택한다는 것은 그 두 명을 다음 인류의 출발점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그 두 명에서부터 출발된 인류는 다시 개체수를 늘려가고, 지금과는 다른 방향으로, 또 그 이전과도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인류가 멸망하고 발전하는 것은 다섯 번이 있었다. 그 중 당신들의 전 인류 오메가이자 현생인류의 알파인 그 두 명을 당신들은 아담과 이브, 혹은 아담과 하와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 이 말의 의미는 인류가 발전하고 멸망하는 것이 몇 번이고 되풀이 되고 있고, 지금 이 상황은 멸망하는 과정. 그리고 남은 천 명 중에서 선택되는 두 명이 다음 인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 도대체 누구지?”
나는 소리쳤다. 인류를 멸망시킬만한 힘을 가진 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있었지만, 확실히 하기 위해 나는 그에게 질문했다.
“나는, 당신들이 신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것이자, 당신들이 살아가는 땅, 지구다.”
그의 말이 끝난 순간 우주가 무너졌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밑을 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그 어둠 속으로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잠에서 깨어났다.
잠에서 깨니 소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내가 얼마나 잤느냐고 물었다. 소녀는 내가 잠든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잠꼬대가 심해서 걱정했다고 한다. 계속해서 비명을 지르고, 몸을 뒤척였다고 했다. 나는 소녀에게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잠시 가만히 서서 꿈속에서 들은 말을 되뇌었다. 마지막 남은 천 명 중 두 명.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그 두 명이라는 것은 나와 이 소녀인 것이다. 우리는 지구의 의지에 의한 멸망 위에서 유일한 정상인 이었고, 남자와 여자였다. 이보다 더 완벽한 상황이 만들어 질 수는 없었다. 지구는 우리를 인위적으로 만나게 한 것이다. 갑작스럽게 우연히 만난 듯 보이지만 그것은 모두 지구의 의지였던 것이다. 나는 사실을 깨달았다. 진리를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이때까지의 일을 모두 적기로 했다.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글을 적어 후세에 물려줄 생각이다. 모두가 자연과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모두가 자연의 섭리를 깨뜨리지 않도록, 현생 인류가 저지른 일들을 모두 적을 것이다.
한 남자가 미친 듯이 중얼거리며 콘크리트 바닥에 주저앉아 A4용지 위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한 소녀가 남자에게로 다가왔다.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남자에게 그만두라고 말했다. 하지만 남자는 듣지 않았다. 오히려 남자는 소녀에게 화를 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남자는 계속해서 자기를 걱정하는 소녀를 폭행하기 시작했다. 주먹질을 하고, 발로 차고, 욕설을 내뱉었다. 사내가 소리를 지를 때마다 소녀의 얼굴이 뭉개지고, 뼈가 부러지고, 피가 흘렀다. 남자는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녀를 폭행했다. 소녀의 치아가 부러지고, 코가 뭉그러지고, 눈두덩은 부풀어 올랐다. 봉긋 솟아있던 가슴이 터지고, 팔이 뒤틀리고, 다리가 부서졌다. 소녀는 입에서, 귀에서, 코에서, 온 몸에서 피를 쏟으며 쓰러져 죽었다. 남자는 자신을 걱정해주는 사람을 짓밟아 죽여 버렸다. 자신의 일에 걸림돌을 제거한 사내는 다시 주저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자신이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며 미친 듯이 중얼거렸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났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 남자는 굶어죽었다. 자신이 쓴 글 위에 피를 토하며 쓰러져 죽었다. 그리고 또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이런…….”
인류 최후의 사내는 가만히 선 채로 시체 두 구를 보고 있었다.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썩어문드러져 버렸지만, 분명 여자와 남자의 시체였다. 인류 최후의 여자가 되었어야 할 여성의 시체와 인류 최후의 적인 남자의 시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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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 losnaHe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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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쓴 것 중 하나 올려봅니다.
이렇게 올리면 되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