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2년 새해의 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1인용 병실의 침대의 등받이에 등을 기댄 채로 무료하게 108인치 홀로그램 프로젝터의 채널을 돌리고 있었다. 친구의 배려로 병실은 오성호텔처럼 편안했고 주변은 조용했다. 세연이가 먹을 것을 사오겠다고 나가 1시간이나 돌아오지 않았고, 덕분에 무료함은 극에 달한 상태였다. 채널을 돌린다고 해도 내가 아는 것은 공중파뿐이었고 낮 시간의 KBS, SBS, MBC는 정말로 시시했다. 세연이가 첫 날 VOD 형식의 프로그램들을 어떻게 불러오는지 간략하게 설명해줬지만 도무지 사용법을 알 수 없었다. 두 시간 동안의 진전 없는 강의 끝에 세연이는 나에게 리모컨 사용법을 가르치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내가 천벌을 받은 거라고 했다.

“맨날 일만 하니까 이런 것도 모르지. 이걸로 바뀐 지 5년이나 지났는데.”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집에도 이 비슷한 프로젝터가 있었으니까. 물론 병원에서의 일이 바빠서 한 번도 본적은 없다. 내가 집에 돌아가는 것은 언제나 새벽이 다 지나서였고, 그 때 쯤이면 12살이나 어린 귀여운 아내도 언제나 잠을 이기지 못하고 침대 속에 있었다. 나도 다른 할 일이 없었다. 다음날의 출근을 위해서는 졸리지 않아도 잠을 청해야 했다. 안 그러면 몸이 버티지 못한다. 그러나 그 점에 대해 딱히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성공한 사람으로 늙는다는 것은 다 그런 것이다. 나도 젊었을 때는 아버지가 이해하지 못하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고 그것을 가지고 놀 수 있다는 점을 아버지께 은근히 과시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내가 드린 사용설명서를 보시면 언제나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고, 결국은 스타크래프트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같은 한물 간 간편한 게임들 속으로 도망치시곤 했다. 아버지는 내 마음 속에서 한물 간 구시대적 인물이었다. 그러나 당신께서 돈을 벌어 오는데 그게 큰 문제가 되는 건 아니었다. 아버지는 나노프레임 디바이스 같은 건 평생토록 건드리지 않으셨지만, 어쨌든 가족을 부족함 없이 먹여 살렸다. 이제는 내가 그렇게 됐을 뿐이다.

일만 하는 게 그렇게 잘못된 일인가? 아니,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드라마에서는 나 같은 사람이 가족을 파괴시킨다고 평범한 주부의 입을 빌려서 비난한다. 그러나 사회가 나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와 같은 사람이 없다면 사회는 유지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희생하고 헌신적으로 일했기 때문에, 이 사회가 삐걱대면서도 돌아가는 것이다. 사회라는 단어 앞에서 가족이란 얼마나 왜소하고 보잘 것 없는 이름인가.

그렇다고 내가 가족을 엉망으로 버려둔 것도 아니다. 나는 하루에 18시간씩 일했지만 자식 둘 모두 서울대를 보냈고, 생활비도 부족함 없이 보내줬다. 안드로이드 가정부가 둘 딸린 분당에 있는 140평짜리 집에 보금자리를 마련했고, 나는 못 가더라도 반년에 한 번씩 해외여행도 보내줬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라는 여자가 자식 둘을 방패처럼 앞세우고 들어와서는 ‘인생은 돈이 전부가 아니다.’ 하면서 이혼해달라고 하면 내가 뭐라고 해야 하는가? 그동안 돈이나 받지 않았으면 말이나 안 하지. 나는 평생 동안 아내의 손에 물을 묻히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그런데 나와 결혼한 뒤 한 일이라고는 신용카드와 노는 것 밖에 없던 여자가 ‘인생은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하면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당신의 마음은 잘 알겠소. 이제 직장을 그만두고 은퇴해서 슬럼가의 15평짜리 집에서 네 가족이 함께 오순도순 잘 삽시다. 라고 하면 기뻐했을까? 전처는 위자료로 재산을 반 떼어갔다. 그녀도 그 점에서는 나를 필요로 했던 것 같다.

어쨌든 이혼에 있어서도 나는 어른스럽게 대처를 했다. 화도 내지 않고, 당신을 이해한다는 말도 하고, 이혼만은 안 된다고 최대한 설득도 했다. 그 이후의 일은 내가 수습하기엔 역부족이었지만 최소한 아이들에게만은 좋은 감정을 남긴 것 같다. 아이들과는 지금도 정기적으로 연락하면서 친구처럼 지낸다.

재혼은 비교적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전부터 바람을 피운 것은 아니다. 세연이는 인턴을 막 벗어난 초짜 의사였고 내가 그녀를 몇 번 도와줬을 뿐이다. 도움이라는 것도 자판기 커피로 대충 때울 수 있을만큼 변변찮은 것이었지만, 내가 이혼남인 것을 안 세연이가 먼저 접근했다. 그녀는 원래 아버지 같은 사람이 이상형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런 낭만에 속지 않는다. 나는 그녀가 속물적이고 프라다나 구찌의 사이버웨어에 많은 돈을 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쨌든 그녀는 또래의, 군대를 다녀와서 경력마저 그녀에게 일 년 뒤처지는 동갑내기 의사들보다는 유복한 이혼남을 맘에 들어 했다. 나는 그게 마음에 들었다. 나는 돈이 있었고, 최소한 그녀는 내 돈은 마음에 들어 했기 때문이다. 세연이도 전처처럼 카드랑 놀았다. 카드 내역에 호스트바가 있는 것은 마음에 안 들지만 묵인할 수는 있었다. 나에게는 어른의 관용이 있었고 세연이도 의대 출신인 만큼 똑똑한 여자였으니까. 파산할 정도로 쓰지는 않았다. 사실, 파산해도 상관없었다. 내 자산 중 일부는 세연이가 접근할 수 없는 곳에서 무럭무럭 이자를 불리고 있다. 일을 때려 쳐도 적당히 유복하게는 살 수 있다. 그것은 정기적인 의사의 급여와는 또 다른 어떤 것이다.

그렇다. 나는 소위 말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침대에서 느낀 초조감의 원인이었다. 세연이가 리모컨 설명에 열중하고 있었을 때, 그것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이유는 굳어진 머리에도 있었지만 아르바이트에도 있었다. 내가 과로로 쓰러졌다고, 브로커가 ‘아, 그렇군. 그럼 선생님이 나으실 때까지 이 일도 중단해야지.’ 라고 생각할 리는 없다. 그는 반드시 또 다른 의사를 구할 것이고, 자신의 사업을 지속할 것이다. 그럼 나만 손해보고 끝나는 것이다. 내가 일에 바친 자긍심도 전혀 없었던 것처럼 사라질 것이 분명했다.

안 그래도 그가 그 전날 찾아왔었다. 2041년 12월 31일 11시 58분쯤이었다. TV에서 막 보신각종 앞을 중계하고 있었던 그 때였다. 과일을 들고 병실 문 앞에서 어정쩡한 웃음을 흘리던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제약회사의 영업맨이었다.

“누구예요?”

“좋은 사람이야.” 달리 설명할 말이 없어서 그렇게만 말했다.

우리는 함께 앉아서 보신각종이 울리는 것을 보았다. 그런 뒤 나는 잠시 세연이를 내보냈다.

“중요한 때에 이렇게 되어 미안하군.”

“아닙니다, 교수님. 우리에게 언제 안 중요한 때가 있었습니까. 언제나 중요했죠. 이런 일도 일어날 수 있는 겁니다.”

“상품은 좀 어떤가?”

“언제나 좋습니다. 중국은 인구가 많으니까요. 그렇지만 요즘은 그쪽이 하도 오염되어서 인도나 베트남도 구해보고 있습니다.”

“음, 그래. 나중에라도 문제가 생기면 안 되니까 그게 좋겠지.”

“네, 뭐 그렇죠. 대단히 송구스럽습니다만……. 이번 주 겁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품속에서 전자종이를 꺼냈다. 나는 그 위에 서명했다. 다섯 번이었다. 이번 주에도 다섯 명의 사람이 구원받았다. 그는 그것을 저장하고 조심스럽게 다시 품에 넣었다.

“언제까지 계셔야 한답니까?”

“글쎄. 과로란 것이 언제까지 쉬어야 한다, 이런 것이 없어서…….”

“기약이 없단 말이군요. 그럼 어쩌죠? 다음 주부터 계속 밀리는데.”

“별 건 아니니까 종합검진 결과만 나오면 퇴원할 수 있을 걸세.”

“결과는 언제 나오죠?”

“일주일? 그쯤은 걸릴걸.”

남자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럼 너무 늦는데.”

“걱정 말게. 환자들도 그 정도는 기다릴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제게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라서요. 사업이란 것이.”

“알고 있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나.”

“혹시 소개시켜 주실만한 다른 선생님 없으십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 정도 돈에 넘어갈만한 의사는 얼마든지 있었다. 의사는 3D직업이나 다름없다. 힘들고 돈도 그렇게 많이 버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더더욱 내 거래처를 남에게 빼앗기는 것이 싫었다. 내가 너무 노골적으로 보였는지, 남자가 소리 없이 웃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어떻게 한 주만 스케쥴을 뒤로 조정해보죠.”

“부탁하네. 오래 거래한 사이 아닌가.”

“네. 그동안 교수님은 정말 잘 해주셨습니다.”

남자는 허리를 굽히며 손을 내밀었다. 우리는 악수를 했고, 남자는 병실을 나섰다. 세연이 재빨리 병실로 들어왔다. 뭔가 미심쩍었던지 문 뒤에서 우리 이야기를 다 듣고 있었던 것 같았다.

“누구예요?”

“응. 내가 일주일에 한 번씩 중국 출장 가잖아. 그 쪽 사람이야.”

“정말요?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병원 사람이야.”

물론 병원 사람이다. 이런 거래에서 병원 사람이 아닐 수가 있나. 세연이 너무 깊이 물어보려 해서 나는 손을 내저었다.

“여보, 나 지금 피곤해. 궁금한 게 있으면 내일 이야기 하지.”

“흐응……. 혹시 내연의 남자?”

뭔가 이상한 낌새를 챈 것도 같지만, 그런 쪽으로 상상력이 가 준다는 게 너무 고마웠다. 나는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해서 그만 웃고 말았다.

“허허. 내가 그렇다면 어쩔 거지?”

“그렇기는 뭘 그래요. 바람을 피우면 당연히 괴롭혀야지.”

그리고 그녀는 나를 간지럽혔다. 나는 항복을 외치면서 그녀를 껴안았고, 우리는 밤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가족이란 좋은 것이고, 언제든지 모든 것을 말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사업 이야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날 밤에 꿈을 꿨다. 꿈속에서 나는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었다. 주말이 되면 남자와 함께 중국으로 날아가 저녁식사를 하고, 밤에는 감옥으로 향한다. 어떤 감옥인지는 때에 따라 다르다. 주로 옌타이 감옥으로 향했고, 그날의 꿈에서도 그 곳이었다. 간수가 경례를 붙이며 우리를 방으로 인도한다. 모든 통신과 감시에서 차단된 작은 방에는 사형수들의 신체검사 데이터를 담은 서류들이 한 움큼 쌓여있다. 이 일은 보안을 요하는 일이기 때문에 언제나 컴퓨터를 쓰지 않고 철저하게 수작업으로 행해졌다. 그곳에서 나는 가방의 서류들을 꺼낸다. 한국의 환자들의 데이터이다. 꿈속에서 나는 내가 최초로 시술했던 사람의 이름을 보았다. 이대원. 지금은 죽고 없는 사람이다. 매우 부자였고, 나와 꽤 친했다. 내가 이 일에 소개받은 것도 그의 추천 때문이었다.

나는 사형수 속에서 한 사람을 골라냈다. 몸의 조건이 대원과 매우 유사한 사람이었다. 나이에는 17살이라고 쓰여 있었다. 더욱 좋았다.

시술은 밤에 행해진다. 생존에 필수적인 부분이면 낮에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대개는 밤 시간이다. 그것이 모두에게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마취에 곯아떨어진 사형수의 몸을 열고 신장을 떼어낸다. 양쪽 신장을 떼어내고 상처부위를 봉합하면 사형수는 다시 감방으로 옮겨진다. 그 다음 일은 내가 알 바 아니다. 아마도 신속하게 사형 집행이 내려질 것이다. 브로커는 중국 정부와 간수들에게 돈을 주고 떼어낸 장기를 한국으로 옮긴다. 세관을 어떻게 통과하는지 모르겠다. 언젠가 내가 물었을 때, 그는 웃으면서 국경은 넓지만 지키는 사람은 그만큼 많지 않다고 말했다. 지키는 사람이 빈곤하게 산다면 더더욱. 내가 이 나라의 왕이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도 모르는 이 땅의 판검사보다 세관원에게 돈을 더 많이 지불할 것이다. 남자는 자기가 세관원 자식들 학비를 다 대줬다고 엄살을 떨었다.

브로커가 한국으로 옮긴 신장을 대원이의 몸속으로 옮긴다. 처음에는 여유도 없고 서툴렀지만 나중에는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나는 해마다 백 명 이상의 사람을 살린다. 외국인이 더 많았다. 주로 미국인, 영국인, 독일인, 일본인이었다. 모두 건강을 위해서라면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면 나를 비난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성형외과나, 치과 의사가 아니다. 나는 사람을 살려서 돈을 번다는 것에 자긍심을 느낀다. 내가 수술을 거부하더라도, 사형수들은 어차피 죽을 운명이었다. 그저 그들이 세상을 버리기 전에 조금이라도 사회에 이로울 수 있게 해주는 것뿐이다. 죄책감이 드는 부분은, 중국 정부가 이 사업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알고 판결에서 사형을 남발하게 만들었다는 정도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도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20세기 이후의 인류는 세계 어디서나 이 짓을 하고 있다.

아침에는 혹시나 잠결에 혼잣말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어 세연이를 슬그머니 떠봤다. 세연이는 모두 잊고 있었다.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



내가 슬슬 고독에 지칠 무렵 세연이 돈까스를 사들고 돌아왔다. 돈까스 집이 유명한 곳이라 사는 데 시간이 늦어졌다고 했다. 병원 밥으로 대충 끼니를 때워 배는 더 이상 고프지 않았다.

“도대체 어딜 갔다 온 거야?”

“이거 사려고 신세계 백화점까지 갔다 왔는데 너무 하는 거 아니에요?”

세연은 입을 부루퉁하게 내밀었다.

“그 정성을 나 때문에 쏟았을 리는 없지. 왜. 예쁜 옷이라도 있었어?”

“에휴~. 영감님. 요즘에 누가 백화점에 옷 사러 가요. 제발 시대를 좀 따라가세요.”

세연이 내 볼을 잡고 살짝 잡아당겼다. 그렇지만 나로서는 백화점에서 옷 말고 뭘 팔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럼 백화점에서 옷을 안 판단 말야?”

“옷도 팔죠. 하지만 요즘은 하도 품질이 비슷해져서 재래시장이나 백화점이나 거기서 거기에요.”

“그래도 브랜드라는 게 차이가 있잖아.”

“좀 더 패셔너블하고 유망한 시장이 있으니까 그랬겠죠? 사이버웨어나 감정 같은 것.”

그러고보니 뉴스 어딘가에서 석유의 고갈과 온난화로 섬유 업계가 동력을 잃어버렸다는 소리를 어딘가에서 들은 적이 있다. 연료는 수소 에너지로 대체할 수 있었지만, 그것만큼은 어떻게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구찌가 사이버웨어를 파는 거였군. 나야 잘 몰랐지.”

“아 참, 여보.”

세연은 아기처럼 내 품 속에 애교를 피우며 안겨왔다. 이런 신호를 보내는 것은 뭔가 사고 싶은 게 있다는 거였다. 실제로는 이런 신호를 받아보는 것도 오랜만이었지만.

“뭐야. 또 사고 싶은 게 있어? 가서 사지 그래. 내가 언제 그런 거 참견하는 거 봤어.”

“응……. 그런 것도 있긴 하지만. 당신도 지루할텐데 함께 백화점이나 가는 게 어때요? 이제 나도 남편이 유행에 뒤떨어진 걸 더는 못 보겠어.”

“뭐? 환자한테 병원 나와서 백화점 가자고? 몹쓸 간병인일세.”

세연은 가볍게 혀를 내밀었다.

“괜찮잖아요. 뭐. 어차피 과로일 뿐이니까 의사 선생님께 말씀 드리면 허락해 주실 거예요.”

“글쎄……. 난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어쨌든 당신이 원한다니 회진 시간에 한 번 물어나 봅시다.”

회진을 도는 사람은 내 친구인 용석이였다. 나는 당연히 그가 이 말도 안 되는 부탁을 단호하게 거절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원칙주의자였고 의사로서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굳이 내가 세연에게 딱 부러지는 거절로 상처를 낼 필요도 못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접한 반응은 정 반대였다. 용석이는 싱글싱글 웃으며,

“잘 됐네, 그래. 한 번 바람이나 쐬고 오지 그래.”

하면서 손에 있는 링겔까지 손수 뽑아주었다.

“아니, 자네. 의사면서 환자 관리를 이렇게 할 수 있나.”

“임마. 예쁜 마누라가 가자면 당연히 따라 나서야지 니가 뭐라고 버텨? 어차피 늙으면 다 병이랑 친구 되고 그런 건데 즐기면서 살다 가는 게 최고지. 얼른 다녀와. 나도 너 바쁘다고 노티내고 다니는 거 영 맘에 안 들었다.”

그래서 나는 꼼짝없이 병원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럴 거면 그냥 현직에 복귀해도 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머리끝까지 뻗쳐올랐지만, 이미 사업은 연기하자고 한 뒤였고 형식상으로는 병원에 입원한 상태였다. 안드로이드가 운행하는 자동 운전 택시를 잡아타면서 세연은 10대 소녀처럼 끊임없이 재잘거렸다.

“평생 당신하고는 이런 일 없을 줄 알았는데 기쁘네요. 마침 평소에 봐뒀던 감정도 신상품으로 나왔고.”

“그게 뭔지 이름이나 들어봅시다.”

“브루노 바나니에서 요시모토 바나나식 감정을 봄 개편에 맞게 재조정해서 내놨거든요. 시험 삼아 착용해봤는데 정말 좋았어요.”

“오호라. 그래서 늦은 거로구만. 돈까스가 아니라.”

“아이 참.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런데 요시모토 바나나는 작가 이름 아닌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그런 류를 읽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요즘에 누가 소설 같은 걸 읽어요. 그건 그냥 제품 분류예요. 같은 내용이라도 감정 쪽이 아날로그인 소설보다는 훨씬 깊이가 있고.”

나는 고등학교 때 소문 난 문학 소년이었다. 내가 청소년기를 보낼 때는 이미 영화와 가상현실에 밀려 소설은 클래식이나 오페라와 같이 마이너한 문화가 되어 있었지만, 나에게는 고급문화를 즐긴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아내의 말을 들으니 마치 내 청소년기가 전부 부정당한 것 같아 불쾌했다.

“그래도 책장을 넘기는 수고로움이 있는 쪽이 훨씬 깊이가 있지. 아무렴 전자장치로 강제 입력시키는 감정이 더 좋으려고.”

“모르시는 말씀이에요. 요새 감정디자이너들이 얼마나 실력이 좋은데요. 일단 가서 한 번 써보세요. 분명 좋아하게 될 거예요.”

“사모님, 쇼핑하러 가시는 길이세요?”

앞좌석에서 운전을 하던 안드로이드가 말을 걸었다. 택시 회사에서 고객을 목적까지 지루하지 않게 모시기 위해 도입한 기능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안드로이드가 하는 이야길 들으면 안드로이드를 진짜 살아있는 것처럼 착각하지만, 나는 언어학자들과 함께 대화 프로그램을 감수했기 때문에 어떤 식의 패턴이 튀어나올지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다행히 이런 기능은 사용자가 원하지 않으면 끌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버튼이 보이지 않았다.

“네.”

“<삐빅>좋으시겠네요. 저도 그 감정 좋아해요.”

“어머? 안드로이드씨도?”

세연이가 이 대화가 가짜란 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기뻐하며 안드로이드의 말에 장단을 맞춰주고 있었다.

“<삐빅>네. 하지만 진짜로 좋아하는 건 카프카죠.”

“그렇군요. 어떤 종류를?”

“<삐빅>카프카 하면 2037년 여름 상품으로 나왔던 변신이 최고죠. 그 벌레가 됐다는 절망감 속에 희미하게 감춰진 그 일탈의 쾌감이라는 것이…….<삐빅> 디자이너가 누군지 모르지만 정말 잘 만들었죠.”

“에이, 기사 아저씨. 유행이 너무 고루하시다. 지금이 몇 년도인데.”

그야 안드로이드가 구형이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나는 문 옆에서 그 버튼을 찾았다. 보통은 의자 뒤에 빨간 버튼으로 보이기 마련인데, 신형 택시라 인테리어에 신경을 썼는지 문과 비슷한 색깔로 구석에 숨어있었다. 나는 버튼을 눌렀다.

“<삐빅>그래도 원문보다는 낫죠. <삐빅>지금은 2/0/4/2/년 1/월/ 1/일/ 입니다.”

나는 잘못 눌렀나 싶어 다시 한 번 버튼을 눌렀다. 아무래도 뭔가가 잘못된 것 같았다. 안드로이드의 머리에서는 끊임없이 그 <삐빅> 소리가 났다. 그리고 말도 멈추지 않았다.

“<삐빅>좋아하시는 것 같으니 한 구절 읊어드리죠. <삐빅> “오……. 내가 벌레란 말인가? 누이의 음악소리에 이처럼 감동을 느끼는 내가 벌레란 말인가?””

“너 이 새끼 닥치지 못해!”

나는 무심코 큰 소리를 질렀다. 원작을 읽어보지도 않은 녀석이 카프카를 이해하는 것처럼 구는 투에 화가 치밀었다. 나는 버튼을 연달아 눌렀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 OS를 탑재한 것들의 공통적인 문제점이 그렇듯, 한 번 잘못된 것은 좀처럼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안드로이드는 이제 숫제 딸꾹질까지 해댔다.

“<삐빅><딸꾹>“바르고 고운 말. 공중도덕의 실천입니다.” <삐빅><딸꾹>“공익 광고 위원회 협찬이었습니다.” <삐빅><딸꾹>“욕은 모두 안드로이드에게! 사람들에게는 칭찬을!” <삐빅><딸꾹>“웃으면 건강에 좋습니다.”<삐빅><딸꾹>…….”

“왜 그렇게 과민반응이에요?” 세연이 물었다.

“이 녀석이 안 멈추잖아.”

나는 버튼을 여전히 누르고 있었지만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세연이 한숨을 쉬며 차창 위의 손잡이를 가리켰다. 손잡이 위쪽으로 스티커가 하나 붙어 있었다. 스티커에는 택시에 이상이 생겼을 때 연락주세요. (주)미노구이 고객서비스 센터 XXXX-XXXX 라고 쓰여 있었다. 내가 전화를 하고 택시의 일련번호를 불러주자 얼마 안 돼 안드로이드는 헤로인이라도 맞은 양처럼 순해졌다.

“이제 좀 낫군.”

일이 진정됐으니 이제는 아내가 화낼 차례였다.

“도대체 왜 그래요? 이게 화낼 일이에요?”

“안드로이드 장단은 왜 맞추는 거야. 저건 가짜라고.”

“가짜면 좀 속아주면 어때요.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닌데.”

“여보. 저 녀석은 카프카를 읽지도 않았어. 맹세컨대 한 줄도 읽지 않았을 거야. 그런 녀석이 문학에 대해서 뭘 아는 척 하는데 화가 안 나?”

“당신은 그렇겠죠. 워낙에 고상하시니까. 하지만 요즘은 그런 거 아무도 안 봐요. 제발 노티 좀 내지 마요!”

싸움은 언제나처럼 내가 지는 것으로 끝났다. 나는 한숨을 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세연도 분위기를 망치긴 싫었는지 금방 나긋나긋해졌다.

“괜찮아요. 몸도 안 좋은데 너무 흥분하지 마세요. 모르긴 몰라도 조금 있으면 안드로이드가 반응하는 게 이해가 될 걸요? 당신은 소설 같은 것도 읽어봤으니까 원작과 비교하는 재미도 각별할거에요.”

“그래. 그렇겠군.”

기술의 진보란 언제나 이렇기 마련이다. 늙은이들은 그저 인정하고 옆으로 비켜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영원히 산다는 하이랜더나 드라큘라를 생각했다. 책에서는 그 인간들, 세대차이도 없었지. 보통 사람은 젊은 사람과 나이차가 10년만 나도 시대를 따라잡지 못하는데.

우리는 백화점에 내렸다. 백화점의 전경은 옛날과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그러나 내부 구조는 꽤 많이 바뀌어 있었다. 1층은 여전히 향수나 화장품, 악세사리를 팔고 있었다. 그러나 2층에는 여성 브랜드의 감정을 파는 매장만 있었고, 옷은 6층에 남성과 여성 의류가 함께 있었다. 세연은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자마자 2층 한복판의 브루노 바나니 매장으로 달려갔다. 그 곳에는 개성적인 색의 사이버웨어와 더불어 전면 디스플레이로 최근 출시된 요시모토 바나나 2042 spring edition이 걸려있었다. 백화점 제복을 입은 감정 조율사가 우리에게 다가와 인사했다.

“여보, 이거 봐요. 어때요?”

아내는 요시모토 바나나식 감정을 자신의 뇌파에 동조시켰다. 나는 그녀에게서 약간의 센치함과 소녀적인 발랄함을 강하게 느꼈다. 감정 조율사는 아내를 보며 ‘매우 잘 어울리세요!’를 연발했다.

“너무 가벼워 보이지 않나요? 저도 좀 나이가 있는데.”

“무슨 말씀이세요. 요즘은 다들 이렇게 하고 다닌답니다. 정말 잘 어울려요.”

“여보, 어때요?”

말투까지 약간 소녀틱하게 변해버렸으므로 나는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으응. 괜찮은 것 같은데.”

“좀 더 자세히 말해줘 봐요. 어떻게 괜찮은 건데요?”

물론 이런 것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내가 뭔가 말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내가 시선을 피하자 세연은 조율사와 함께 웃었다.

“됐어요. 이거 싸주세요.”

“그렇게 할까요?”

감정 조율사는 카드와 감정을 가지고 계산대로 갔다. 나는 복잡한 느낌이었다. 집에서도 가끔 그녀의 분위기가 바뀐 것을 느낄 때가 있었다. 나는 그것이 그녀의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그녀의 내재적인 생물적 요인이 아니라, 외재적인 기계장치에 의해 바뀌었다는 것을 깨닫자 마치 속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 샀으면 가지.”

“아뇨. 아직.”

“더 고를 게 있나?”

세연은 나를 끌고 4층의 남성 브랜드 감정을 파는 곳으로 향했다.

“어떤 감정이 좋아요?”

“어떤 게 좋냐니?”

“비극이라던가, 희극이라던가, 중후하다던가, 가볍다던가, 캐주얼하다던가. 있잖아요.”

“글쎄. 난 잘 모르니 당신 뜻대로 하지.”

“나중에 딴 말 하기 없기에요.”

그녀는 날 이끌고 아르마니 매장으로 갔다. 디스플레이는 달랐지만 취급하는 상품은 비슷했다. 단정하게 양복을 입은 남성 감정 조율사가 우리를 보고 다가왔다.

“이이가 사용할 감정 좀 맞춰주세요.”

“알겠습니다.”

나는 사냥개에게 맡겨진 거위처럼 얌전히 기다렸다. 그는 내 얼굴이나 복장을 뜯어보고는 몇 가지 감정을 가져왔다. 그는 그것을 내 뒷머리를 향해 가져갔다. 그리고 숙련된 동작으로 그것을 내 머리에 적용시켰다. 차가운 기운이 내 척추를 타고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엇, 이런. 이번이 처음이신가요?” 남자는 놀란 듯이 물었다. 나는 뒷머리에서 감정을 빼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사모님이 워낙 잘 꾸미고 다니셔서 미처 생각을 못 했습니다. 감정을 처음 사용하시는 분들은 몇 가지 설정을 해야 하는데 30분 정도 시간을 내주실 수 있을까요?”

세연이 나를 보았다. 그 시점에서 내가 뭐라고 말할 것인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뭘 하는 거요?”

“간단합니다. 감정을 동조시키기에 편하도록 뇌파 속에 표준 코덱을 삽입해야 합니다. 부작용은 전혀 없으니까 안심해도 되시구요.”

그는 새로운 장치를 가져다 내 머리에 여기저기 붙였다. 기계가 돌아가며 내 뇌 속에 뭔짓인가를 하는 동안 그는 기다리기 편하도록 그들이 취급하는 감정의 목록이 포함된 팜플렛을 내게 가져다주었다.

“현재 저희의 주력상품은 움베르트 에코 3.5rd 에디션입니다. 럭셔리하고 지적이죠. 고풍스럽고. 이 감정이 요새 가장 잘 나갑니다.”

그는 또 한 부분을 가리키며,

“이쪽은 파울로 코엘료 2042 봄 에디션이구요, 그의 작품인 11분을 매인으로 감정을 구성했습니다. 좀 더 부드럽고……여성적인 분위기를 삽입해서 인기가 좋습니다. 봄에 잘 어울리죠.”

“허허. 나는 잘 모르겠군. 이런 걸 꼭 해야 되는지….”

“요즘은 인문학적 감수성이 중요하게 요구받는 시점이니까요. 한 번 감정을 써보시면 인생이 풍부해진다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요즘은 양적인 삶보다는 질적인 삶을 추구하는 시대니까요.”

한 장을 더 넘기자 그는 다른 감정을 가리켰다.

“아니면 이쪽 취향은 어떠십니까? 체 게바라 2041 겨울 상품입니다. 창조적 리얼리스트의 감성을 강조해서 취업 준비생들에게 인기가 좋습니다.”

“이 사람은 공산주의자 아닌가? 이런 것도 파나?”

“아, 물론. 고객들의 취향을 고려해 좌파적 코드를 삭제한 버전입니다. 2031년 이후로는 모두 그렇게 판매되고 있죠.”

팜플렛을 보는 도중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것은 카프카였다.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연도와 계절별로 분류가 되어 있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그것을 가리켰다.

“이것을 주게.”

“고객님. 카프카는 유행이 지나서 더 이상 찾지 않는 상품입니다. 2040년 여름 상품이 가장 최근 것입니다만, 괜찮겠습니까?”

“2040년? 2037년 여름 것은 없나?”

남자는 내가 한참의 옛날 것을 구체적으로 거명하자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세연이 옆에서 날 보며 웃었다.

“이이가 바라는 대로 해주세요.”

“하지만 그것은 전시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새로 데이터를 다운로드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요.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아요. 우린 시간 많으니까.”

남자는 다른 직원에게 업무를 맡기고 물건을 가지러 어딘가로 사라졌다.

“에궁~. 그 안드로이드를 아직도 신경 쓰고 계셨쪄요?”

“그런 거 아냐. 표준 대화집에 수록될 정도면 가장 유명한 것 같아서 고른 거야.”

물론 실제로는 아내의 말이 맞았다. 나는 어설프게 사람의 감정을 모방하려한 안드로이드를 비웃고 싶었다. 모든 것이 기계화되고, 자동화 된 시대지만 나는 인간의 감정만큼은 진실된 것이라 믿었다. 이미 세상은 바뀌어 전통적인 인간의 규정이었던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개념은 발달된 AI에 의해 위협받는다. 그런 상황에서 인간이 유일하게 자신을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감정에서일 뿐이라고, 나는 그렇게 믿었던 것이다.

안드로이드를 비웃는다는 것은 곧 인위적으로 재현된 감정을 비웃는 것이었다. 누가 뭐래든 나는 이미 감정을 사용한 뒤의 감상을 정해두고 있었다. ‘원작보다 못하구만.’ 아내는 나더러 고루하다고 할 테지만 세상에는 나 같이 한물 간 인간도 필요하다고 느꼈다. 순간적으로 내가 잊혀져가는 과거의 유산을 수호하는 사람처럼 생각되어 뿌듯함도 느꼈다. 그렇지. 이런 것이야말로 진짜 감정이지.

감정 조율사는 새로운 감정을 가지고 와 내 앞에서 포장을 뜯었다. 탈취제의 냄새와 함께 카프카의 2037년 제품이 내 앞에 주어졌다.

“어떻게 사용하는 거지.”

“도와드리겠습니다.”

남자는 카프카를 내 뒷목에 입력시켰다. 한순간 주변이 완전히 검게 변했다. 그러나 당황할 여유도 없었다. 어떤 강력한 힘이 나를 특정한 감정을 향해 거칠게 몰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그레고르 잠자의 감정이었다. 아무 이유도 없이 운명의 원형적 저주에 갇혀버린 남자의 절망과 가족에 대한 희망, 그리고 절망이 순차적으로 나의 마음속을 후벼놓았다. 그리고 그 너머에 존재하는, 심약하고 병든 작가의 마음까지 어렴풋하게 느끼게 되었을 때 나는 참지 못하고 그것을 떼어버렸다. 그것은 진짜였다. 더할 나위 없는 진짜였다. 마치 내가 카프카의 뇌를 한 스푼 떼어 꿀꺽 삼키고, 어떠한 기억의 손실도 없이 그 모든 것을 나의 것으로 체화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오리지날 텍스트를 접했던 유복하고 삶의 불안도 없었던 한 소년의 감상과 같이 빈약하지도 않았다.

나는 사형수에게서 떼어냈던 신장을 떠올렸다. 그것은 카프카의 신장이었다. 그의 몸에서 잘린 일부가 나의 마음속으로 들어와 메마른 줄만 알았던 나의 감수성에 다시 한 번 불을 지폈다. 그것은 불쾌한 감정이었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장기를 이식받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고유한 내가 아니었지만, 나보다 나를 위해 더 좋은 것이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이 감정이 나의 감정보다 우월했다.

나는 매장에 놓인 의자에서 고개를 숙이고 울기 시작했다. 세연이 다가와 내 등을 두드렸다. 눈물이 도무지 멎을 것 같지 않았다.

“여보, 괜찮아요?”

“원래 처음 하시는 분들 중에 그런 반응을 보이는 분들이 계십니다. 여러 번 써보시면 익숙해지실 거예요.”

내 아내와 아르마니 직원들은 나를 새로 태어난 사람처럼 대우했다. 그들은 나에게 악수를 건네며 그들의 좋은 고객이 된 것을, 또한 내가 얼마나 감정이 풍부한 얼굴을 가지게 된 것을 거울을 보여주며 축하했다. 나는 몇 가지 감정을 구매했다. 신상품에는 신상품다운 진보가 있었고, 돈을 지불한다는 것이 전혀 아깝게 생각되지 않았다. 그것은 그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일을 다 마치자 세연은 화장실을 갔다. 나는 화장실 옆에 마련된 휴게소에 앉아 병원으로 돌아가 다시금 감정을 사용할 마음에 벅차올랐다. 아내를 기다리며 별 생각 없이 주변을 둘러보는데 문득 매장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그곳이 마치 없는 것처럼 눈도 주지 않고 지나쳤다. 빈폴과 Hezzy 매장 사이에 있는 그 국산 매장은 알려지지 않은 명성만큼이나 그 디스플레이에서도 보잘 것 없었다. 그러나 그 매장은 내가 흥미를 가질만한 이름을 하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감정 조율사가 반쯤은 심드렁한 얼굴로 나를 맞았다. 그들이 취급하는 상품은 젊은 사람들 것 위주였기 때문에 내가 구매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간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까 택시를 탔는데 당신네 택시였소. 안드로이드가 말을 멈추지 않아서 고생 좀 했지.”

미노구이 매장 담당자는 왜 그런 것을 자기에게 묻느냐는 식의 얼굴을 했다. 그러나 내가 일단은 고객인지라, 무례하게는 굴지 못하고 머리를 숙였다.

“그 일은 정말로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고객센터로 연락을 주시면 담당자가 적절한 대책을 취해주실 겁니다.”

“됐소. 그 일은 이미 해결됐으니까.”

나는 매장에 놓인 의자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당신네 회사는 어떤 곳이오? 택시 회사인 줄로만 알았는데 감정 매장도 가지고 있고. 사업이 꽤 잘됐나보군.”

“그야 그렇지요. 저희도 유명 백화점에 매장을 꾸릴 정도는 됐으니까요. 하지만 보다시피”

조율사는 손님이 없는 매장을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했다.

“원래 이렇게 인기가 없소?”

“저희가 파는 감정은 정통적인 것이 아니라 일종의 기능성 틈새상품입니다. 슬픔이나 기쁨, 분노나 안타까움 같은 전형적인 감정에서는 기존의 브랜드를 따라갈 수 없으니까요. 보기엔 이래보여도 백화점 밖에서는 나름대로 선전하고 있습니다.”

“그럼 당신들이 취급하는 감정은 뭡니까?”

“글쎄요. 음…….”

감정 조율사는 이것저것 둘러보다가 몇 가지 감정을 내게 내밀었다.

“이런 것들이죠. 저희가 주력상품으로 내놓는 것들입니다. 다니엘 데넷,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국산 작품군의 장려를 위해 조세희, 최인훈 같은 작가들의 감정도 시도하고 있죠.”

“확실히 정통적인 작가군은 아니로군.”

“저희의 감정 디자이너들은 뚜렷한 목표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저희의 목적은 인간의 감정을 풍요롭게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반대로, 감정에서 한 발자국 물러서 그 자체를 묻고자 하는 거죠. 우리는 괴델의 불확정성 원리와 비슷하게 감정을 구조적인 불안 속으로 던져 넣습니다. 감정을 그 내면적 구조로부터 붕괴시키고 해체하는 거죠. 지적인 분위기를 주려고 노력합니다만, 그것은 실제적인 지성은 아닙니다. 다만 그런 척 하는 것뿐이죠.”

그것은 흥미 있는 목적이었고, 세상 모든 것에 불만을 가지고 뒤집고 싶어 하는 사춘기 소년들의 감성에 걸맞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것을 어떻게 시도할 수 있겠소?”

“간단합니다. 감정의 사용자가 이야기를 모두 진짜라고 믿게 만드는 거죠. 그리고 사용자가 그 모든 것을 믿게 될 때 그 반대 증거를 제출하는 겁니다.”

“그런 시도에 무슨 이득이 있는 겁니까?”

“오. 알다시피 세상에는 그런 단순한 비틀기도 심오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자적으로 주어지는 감정들이 진정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그러나 그런 사람들도 취업이든 다른 이유로든 감정을 구매할 필요는 있으니까요.”

“그럼 이 모든 것들이 가짜라고 하는……?”

“글쎄요. 저희는 그 점에까지 결론을 내리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예술작품이란 모두 속임수입니다. 위대한 작가란 감상자들이 지금 속고 있고,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진 모든 것들이 가짜라는 것을 잊게 만드는 사람들이죠. 그들이 맘에 들지 않으면 이렇게 생각하기만 하면 됩니다. 무슨 말을 해도 저 이야기는 가짜고, 저 대사나 표정도 모두 연출된 것에 불과해. 그러면 모든 작품은 생명력을 잃게 됩니다. 그러나 작품을 그렇게 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죠. 사람들은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믿고 싶어 하고, 최소한 그 속에 어떤 메시지나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랬던 사람들이 막상 감정을 사러 왔을 때는 회의적이 됩니다. 거부감을 가지고, 이것은 진정한 감정이 아냐. 진정한 감정은 인간의 내부에서 울려나오는 것이야. 라고 말을 합니다. 물론 그것이 가짜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쌓아 올려온 모든 감정이 실제로는 거짓말이라는 셈이 됩니다. 모든 예술은, 어디까지 감상자를 철저하게 속일 수 있느냐, 를 겨루는 것에 불과하니까요.”

그는 이야기를 하다 말고 뭔가를 깨달은 듯 부스 아래로 허리를 굽혔다.

“마침 저희가 준비한 감정의 샘플이 있습니다. 이것을 사용해보시면 대충 저희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자, 이것이 요즘 유행하는 감정입니다.”

그가 내민 감정의 샘플에는 노란 배경에 검은 글자로 ‘이것이 요즘 유행하는 감정입니다.’라는 글이 적혀있었다.

“이것은 과로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한 의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장기 밀매를 생계로 삼는 사람이었죠…….”

“여보, 뭐 해요. 안 돌아가요?”

세연이 등 뒤에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