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절름발이, 그를 그렇게 부른다. 사실 그는 타고난 병신도 아니며 사지 멀쩡한 사내이나 씻기는 일년에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이며 천성이 게을러서 움직일 줄 몰라 그늘에 자리 잡으면 하루 종일 있기가 일쑤였다.

거지 중에서도 상거지이나, 꼴에 양반 가문이라고 폼을 재면서 팔자걸음 흉내를 낸다. 도포자락도 없이 다 낡아서 살이 휑하게 보이는 바지를 입어서 그런지 몰라도 퍽이나 어설프고 웃겨서 그가 ‘어험!’ 하고 지나갈 때마다 동네 아이들이 낄낄 웃지만 그는 근엄하게 걸어갈 뿐이었다. 그 팔자걸음이라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지 절름발이가 팔자걸음을 옮기면 한쪽발만 보폭을 넓게 잡아서 기우뚱기우뚱 곧 넘어질 듯하다 해서 아이들이 그를 절름발이라 부르는 것이다.

사지 멀쩡하면서 일이란 하지 않고 그날그날 돈 있으면 국수 하나 사먹고 없으면 없는대로 사는 것이 참으로 편안하게 보이나, 누구하나 그를 부러워하거나 따라하는 자는 없었다.

그는 돈 한푼 없으면서 구걸하지도 않지만 종종 동네사람들이 그가 돈이 떨어져갈 적이면 슬쩍 주머니에 지폐 몇 장을 끼워주니 그게 이 마을의 구수한 정일 것이다.

가끔씩 그는 그늘에 앉아서 선비나 득도한 고승처럼 시를 읊는데 소리는 그렇듯하게 우렁차나 그 내용은 실상 별 볼일없는 시정잡배의 세상놀음과 같아서 이제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아무 것도 없는 무일푼인 그조차 양반처럼 주머니를 항상 옆에 차고 다니는데 마을 사람은 항상 그게 무엇인지 신기해하였다. 뭔가 두둑해 보이는데 해마다 불러가는 것이 여간 신경쓰이는게 아니다. 그렇다고 확인해볼 정도로 사람들이 관심 있어 하는 것도 아니며 배짱 두둑한 절름발이조차 그 주머니를 누군가 바라보면 횡하고 숨겼다.

“도(道)는 것은 아무 것도 가져서는 안 되니, 그것이 도(道)이다. 하지만 나는 창피하기 짝이 없구나.”

절름발이는 제법 투실투실하게 자란 수염을 매만지며 그렇게 말했다. 밭을 매고 돌아가는 길에 나는 그를 흘깃 스쳐보았고 그는 나를 마주 바라보아 누런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김서방은 항상 바쁘군.”
“영감님은 오늘도 신선놀음이요?”

그는 말없이 나를 쳐다보다 논자니 도덕경이니 하는 곳의 구절을 들려주었으나 나같이 무식한 것이 듣는다고 알 리가 없다. 투덜투덜거리며 나는 주머니에서 집히는 대로 전을 꺼내 절름발이의 옷자락 속으로 쑤욱 집어넣었다.

“그걸로 약주나 하소.”
“김서방은 마음씨가 고우니 성공할 거세.”

마을 사람이나 누구나 들었을 절름발이의 덕담에 나는 투박하게 고개를 한번 숙였다가 일으켰다. 그래도 이 마을에서 가장 고령 중 하나인지라 어지간하게 예의를 차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어느 곳이나 그렇겠지만 우리 마을은 특히나 비가 오면 여러 가지가 골치아프기 짝이 없다. 논으로 가는 길은 도랑에 놓인 다리 하나 밖에 없는데, 이맘 때 쯤이면 장마로 물에 잠기기 일쑤였으니 하루라도 게을리 손보면 귀한 작물이 망가지지만 강 둔덕에서 발이나 동동 구를 수밖에 없다.

다리가 물에 잠기질 않길 바라는 마음은 나만 아니라 마을 전체의 마음이다.



2
김치 한포기랑 식은 밥을 꾸역꾸역 입에 집어넣고 밭에 나가는데 요상한 안경잡이가 다리 밑에서 서성서성 걸어다녔다. 외지인인 듯 하였는데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정장과 손에 든 괴상망칙한 것들은 마을 어르신이 본다면 충분히 역정을 내기에 충분했다.

반년 전 도시로 나가서 성공해 돌아온 똥팔이 녀석도 정장을 입고 무쇠수레 끌고 왔다가 어르신들에게 호되게 혼나지 않았던가. 어디까지나 어르신들이 화냈다는 것이지, 나같이 촌구석에 처박힌 청년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계집년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어찌든 똥팔이 녀석과 엮어보려고 가슴춤을 푸는 모습을 보니 그 년들에게 화딱지가 솟아올랐다. 떡방앗간의 춘녀는 날보고는 그렇게 새침 떨면서 차갑게 굴더니 똥팔이 녀석에게 얼마나 살갑게 굴던지.

안경잡이는 서성이며 이상한 것들로 다리를 기웃기웃 살피다가 고개를 끄덕이는 등 혼자서 별지랄을 떨고 있었다. 무표정하게 나는 다리를 건넜고 안경잡이 역시 나를 흘겨보다가 자기 일에 열중했다.

나는 속으로 흥하며 코웃음을 치고 괭이를 어깨에 메었다.


3
다음날 역시 안경잡이는 거기서 자기 일에 몰두했다. 이번에는 덩치 큰 장정까지 데리고 와서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였다. 이 쯤이면 마을 어르신이 무어라 말할 만도 하지만 듣자하니 이장님께서 왔다가 몇마디 투닥거린 후에 아무 일도 없었다 한다. 그 까탈한 이장님이 말이다. 나는 무슨 일인지 메어 궁금하여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장님의 얼굴과 마주하여 이야기할 자신도 없고 생면부지의 안경잡이에게 물어볼 정도로 의욕 넘치는 청년도 아니었다.

밭에 나가면서 몰래몰래 열매 몇 개를 서리해서 품안에 가득 안고 한입씩 물면서 걸었다. 강둑에는 조씨가 있었는데 이름은 나도 모른다. 그냥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를 조씨라 부르며 나도 그리 따라 부르는 것이다.

그는 일하지도 않지만 가난하지도 않았다. 듣던 바로는 소설가라고 하던데, 그런 글나부랭이로 퍽이나 잘 먹고 사는지. 그는 수염이 덥수룩한 30대로 나보다 조금 위라고 생각한다. 그는 책을 펴서 읽고 있었다.

나는 호기심에 그의 어깨너머로 어설피 글자를 읽어나갔다.
그러나 금새 관심을 잃고 휘파람이나 불며 그의 옆에 맴돌았다.

“달수인가?”
“다 알면서 그렇게 묻는건 뭔 심보요. 조씨는 책이 그렇게 재밌수?”
“자네도 한번 읽어볼텐가? 요즘에는 상놈 양반 가릴 것 없이 모두 글을 읽고 써야한다네. 자네는 물론.”
“어르신들이 들으면 큰일 날 소릴.”

시덥잖게 그의 이야기를 듣기 싫어서 나는 벌떡 일어나 밭으로 나갔다. 조씨는 입맛만 다시며 나를 향해 외쳤다.

“언제 글 배울 생각 있으면 오게나.”


4

오늘은 밭에 나가지 않았다. 이틀치를 전부 끝난 것도 끝난 것이지만 이제 비만 적절하게 오길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슬슬 장마철이라 어르신들은 온몸에 통증을 호소하였다. 집안에 처박혀서 빈둥거리기는 싫었기에 술이나 한잔 거하게 마실 생각으로 나왔더니 문은 닫겨 있었다.

“김서방 오늘은 일 안 나가는가?”
“어련히 알아서 하겠수.”

절름발이 영감이 또 심심한 모양인지 나를 향해 너스레 말을 걸어온다. 딱히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의 말을 거절한 입장도 아닌지라 나는 잠시 싫은 내색을 하다가 그와 마주했다. 그는 ‘어험’ 헛기침하며 절뚝이는 팔자걸음으로 내 앞까지 걸어와서 뒷춤에 차고 있는 무엇을 나에게 내밀었다.

“막걸리 한잔 하겠는가?”
이게 무슨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란 말인가! 내 29년을 살면서 저 영감이 국수 말고는 무엇을 산다는 행위 자체를 못하는 줄 알았건만! 나는 놀래서 어떨떨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영감은 기분이 나빠졌는지 소매 속으로 숨을 감추었다.

“아니, 아니. 그게 싫다는게 아니라. 며칠 전부터 봐두었던 황구 한 마리가 있는데 그걸 생각한다고.”

나는 황급히 변명하며 절름발이의 소매를 붙잡았다. 그는 씨익 웃었다.
황구를 잡기위해 나는 마을 전체를 발에 땀띠 나도록 달렸다.

“극락왕생하길.”

30분동안 뻘뻘 뛰어다녀서 황구를 잡았다. 가끔 주인 없는 개가 마을에 들어오긴 하지만 내가 작정하고 개를 잡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여태까지 다른 사람이 대해둔 것을 끼여 들어 다리 하나 뜯어본게 전부였지만 오늘은 단단히 먹어둬야 할 것만 같았다.

나는 개의 명복을 빌어주면서 뒷다리 하나를 뜯어 절름발이에게 쥐어주고 나도 다리를 뜯어 한입 물었다. 그 다음에 쉴틈도 없이 막걸리 한사발을 벌컥벌컥 마셨으니 목구멍이 시원해지며 간만에 맛보는 술에 저절로 감탄사가 나오며 흥겨워졌다.

영감도 붉게 변한 얼굴로 턱수염을 몇 번 쓰다듬고 노래를 불렀다. 노래 제목도 모르고 어려운 말이 섞여있으니 뜻도 모르지만 그냥 흐름을 타며 나무작대기를 부딪치며 박자를 넣어주었다.

영감은 거지 주제에 어디서 배웠는지 재주는 많았다. 탈춤 추듯이 춤을 추다가도 내 손을 맞잡고 기렁뱅이 놀이를 하니 반쯤은 술기운에 밀려서 그와 어울렸다.

“영감님 오래사슈.”
“갑지기 뭔소리여.”
“사람이 안하던 짓하면 죽는데유.”
“것도 그렇군.”

‘고작 술 산 것으로 안하던 짓이냐!’ 라며 호통칠 줄 알았는데 영감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묘한 위화감을 느끼며 비틀비틀 집으로 들어왔다.


5
예상대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소낙비처럼 줄줄 내리지만 정작 멈출 줄 모르니 여간 걱정이 아니었다. 비 때문에 못쓰게 되는 작물이 하나 둘이 아닌 것이다. 거기다가 관리까지 못하면 살릴 수 있는 것마저 죽어버린다. 우리 마을은 이 장마를 기점으로 풍년과 흉년을 나눈다. 대체적으로 흉년이나 혹시 하는 마음에 비가 안오길 바라는 것이다.

빗소리만 빼면 마을은 조용했다. 작은 마을이고 사람들 품성도 조용조용하고 나긋나긋하니 시끄러울 일이 없는 동네이다. 비가 주륵주륵 오는 날, 가끔 비가 그치기도 했지만 밖에 나가기가 무섭게 곧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쿵- 쿵- 두르르-

나는 낯선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이내 빗소리에 지워졌다. 에라이 모르겠다.
찜찜하게 습기찬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려 눈을 감으니 지난 술기운이 덜 빠졌는지 눕기가 무섭게 의식이 흐릿해졌다.

쿵- 쿵- 두르르-



6
  
아침이 되었다. 구름이 한바탕 쏟아내고 간 뒤라 아직 대체적으로 질퍽질퍽하였지만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다. 짹짹 울어대는 참새를 뒤로하고 다리가 잠겼는지 안 잠겼는지 확인하기 위해 마을을 나섰다.

웅성- 웅성-

그렇게 조용하던 마을이 무슨 일로 시끄러워졌는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사람들 틈새를 헤쳤다. 다리 근처에 모두 모여 있었는데 물은 강둑을 넘어 발끝까지 차올라있었다. 나는 글렀구나, 생각하며 다리가 있던 쪽을 바라보았는데 놀랍게도 다리는 멀쩡한 것이 아닌가?

언제 보수했는지 다리는 높게 솟아있었으며 여기저기 알 수 없는 철구조물로 고정되어있는 것이 문외한인 내가 봐도 튼튼하게 보였다.

어젯밤 했던 것인가? 나는 쿵쾅이던 울림을 떠올렸다.

웅성이는 마을 사람 사이로 이장님이 나왔다. 일제히 웅성임이 멈추고 눈동자는 이장님을 향해 쫓아갔다.

“어느 고인의 후원으로 오랫동안 마을의 골치 덩어리였던….”

이장의 말이 끝나자, 마을 사람들의 입이 바빠졌다. 누가 후원했을까? 라는 것이지만 딱히 잡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도시에서 성공했던 사람들은 모두 어르신들에게 욕먹고 쫓겨났으며 더군다나 그렇지 않아도 똥팔이나 기덕이 같은 녀석들이 자진해서 이름도 올리지 않고 이런 일을 할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알아서 무얼하리, 나는 밭일을 하기위해 가장 먼저 다리를 건넜다. 묘한 철울림에 감흥을 느끼면서.




7

나는 밭일을 끝내고 노곤한 몸을 끌고 마을로 돌아왔다. 새로 생긴 철다리가 신기한지 개구쟁이 아이들이 이리저리 장난쳤고 나는 이유 없이 화가 나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런다고 그 겁모르는 철부지들이 그만둘 리가 없었다.

한숨을 쉬면서 걷다가 절름발이 영감을 발견했다. 그는 평소보다 더 기합을 팍팍주고 더 보폭을 늘려 걸었다. 그러니 더 우스꽝스러웠다.

그날 같이 술을 마신 이후로 제법 유대감일 생겼기에 나는 저번과 같이 싫은 내색은 보이지 않았다.

“김서방, 새로 생긴 다리는 보았나?”
“매일 지나다니는 길인데 못 볼 리가 있겠수.”
“여전히 말투하고는.”

나는 영감이 무얼 말하려다가 끊는 것을 보았다. 나는 무심코 영감의 양반 주머니가 홀쭉한 것을 발견했다. 매년 불어서 이제는 주먹만 해졌던 주머니가 오늘은 아무 것도 안 들었는 것처럼 홀쭉하지 않은가?

영감의 표정은 무언의 자신감과 흐뭇함이 있었다. 그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나도 그에 화답하여 간만에 입이 찢어지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푼돈을 꺼내어 아무도 손대지 못했던 그의 주머니에 넣었다.

“가끔은 고기도 사먹으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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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역시 어느날 갑자기 교과서풍으로 써보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