랫스베인 전기 : 3인의 주술사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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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하하!
웃음소리에 맞추어
한바퀴 두 바퀴, 그래 좋아!

정신없이 소리를 질러도
오늘밤만큼은 좋은 것
어지럽게 빙글빙글 돌아도
오늘밤은 용서할 수 있는 것

술잔에 코를 박고 마셔보았소?
난 술통에 빠져 허우적대었지

생각은 할수록 슬픈 것
배는 갈수록 고픈 것

각자의 내일로 향할 술잔에
이성의 끈을 끊고, 풍덩!
서로의 파트너를 끌어안은 채
그윽한 눈빛으로, 빙글!

쟁반같이 뜬 달에 대고
심연같이 깊은 술잔에 바치는
술꾼의 경배의 춤사위

한바퀴, 두 바퀴!
그래 좋아, 그렇게!

-지새는 밤의 노래, 어슐라교의 성가 제4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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랫스베인 전기 : 3인의 주술사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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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크들이 이름을 붙인 ‘썬더 잼’ 계곡은, 그 괴팍한 이름만큼이나 험난한 오지였다.
  썬더 잼 계곡은 어떤 대부족에도 속하지 않는 미개한 잡종 오크들의 땅이었다. 바닥에는 끈적한 진흙이, 위에는 괴팍한 기암괴석이 들어찬 이 골짜기는, 지난 수 백 년 간 여러 잡종 오크 부족들의 은신처가 되어 왔다.
  다루시아 남부의 하플링들이 만든 종교인 ‘어슐라’―수확, 축제, 광기, 행운을 상징하는 신―를 섬기는 성직자 랫스베인은, 며칠 째 물도 없이 이 험난한 계곡 안을 헤매고 있었다.
  랫스베인은 골짜기 중턱에서 썩어가는 나무 창대를 하나 발견했다. 이 일대는 아주 오래전에 화산 지대였던 곳이어서 구멍이 숭숭 뚫린 검은 바위들이 많았다. 그가 발견한 창대 역시 시커먼 현무암의 구멍에 억지로 쑤셔 박혀 있었다.
  그는 창대에 장식처럼 꿰어 있던 해골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인간, 혹은 엘프 종으로 추정되는 두개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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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제와 거짓말의 신인 ‘어슐라’는 하플링들이 만든 종교였다.
  ‘하플링’은 서부 대륙에서 가장 뛰어난 농업 기술을 가진 종족이었다. 그들은 독자적이고 훌륭한 농업기술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소비적인 문화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하플링들의 놀기 좋아하는 성격은, 흥청망청한 ‘어슐라’ 교단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성직자 ‘랫스베인(Ratsbain)’은, 바로 그 종교를 섬기는 30대 후반의 남자였다. 그는 한때 음유시인이었고, 도둑이었으며, 장사꾼이기도 했다.
  랫스베인이 어슐라의 지팡이가 된 것에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그는 대륙을 떠돌며 음유시인으로 생활하던 중, 어느 날 어슐라 교도들의 잔치에 초대받게 되었다. 그 날 잔치에서 크게 감명을 받은 랫스베인은, 이 유쾌한 술의 종교에 평생 동안 몸을 담기로 맹세를 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평생 동안 술독에 빠져 살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는 어슐라교에 입단하면서 자신의 본명을 버렸다. 축제와 거짓말, 광기의 신봉자들인 어슐라 교도들은 대부분 랫스베인처럼 자신의 본명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주점에서 행패를 부리다가 본명으로 욕을 먹으면, 그 이름을 지어주신 부모님의 생각이 나서 괜시리 슬퍼진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것이 어슐라 교의 성직자들 사이에서 가장 유력한 이유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농담 중 하나였다.) ――이것을 좀 더 신학적인 표현으로 풀어 쓰자면, ‘자신의 과거와 결별하고 거짓말과 축제의 광기를 몸에 받아들이기 위한 의식’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어쨌거나, 자신의 본명을 버린 그 남자는, ‘랫스베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는 이 별명을 그대로 신명으로 이어받아,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랫스베인’이라는 법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참고로, 그에게 이런 별명이 붙은 이유는, 랫스베인이 수련소에서 공부를 할 때 있었던 사건이 원인이었다.
  대부분의 어슐라 교도들은 ‘돌팔매질’에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어슐라교를 만든 하플링들이 돌팔매에 능한 종족들이었기 때문이다. 어슐라교를 믿는 성직자들은 하플링들의 전통을 본받아서 수련 과정에 돌팔매질을 연습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은 랫스베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어슐라의 성직자가 되기 위해서 돌팔매를 열심히 배웠다.
  수련소에서 공부를 하던 시절, 랫스베인은 수련소의 누구보다 ‘쥐잡기’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런데, 그가 쥐를 잡을 때 사용하던 도구는, 다름 아닌 ‘돌팔매’였다. 그는 잽싼 쥐를 맞출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돌팔매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수련소의 쥐약 대용품, 즉, ‘랫스베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은 그의 놀라운 돌팔매 기술을 칭찬하는 호칭인 동시에, 역시나 별로 성직자답지는 않은 법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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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랫스베인 형제.”

  어느 날, 랫스베인이 기거하던 주점에 ‘무라이 선장’이 찾아왔다.
  무라이 선장은 루윈 구릉 출신의 어슐라 교도였고, 웬만한 인간보다 머리가 좋은 고블린이기도 했다. 무라이의 인간보다 뛰어난 두뇌 능력은 그의 인생 설계에서도 발휘되어, 현재 무라이 선장은 어슐라 교단의 대사제직을 맡고 있는 실력자였다.
  
  “라카닌 왕국에 이상이 생겼다네. 이번에, 랫스베인 형제가 가서 그 일을 도와주어야겠네.”
  “내가 왜요?”

  랫스베인이 관심 없다는 듯이 말하자, 무라이 선장은 작은 녹색 얼굴에 장사꾼의 미소를 띄웠다.

  “만약 자네가 그 사건을 해결해준다면, 이 일대의 주점을 모두 관리할 수 있도록 해주겠네.”

  그의 제의에 랫스베인은 귀가 솔깃해졌다.
  어슐라 교단은 본래부터 특정한 수도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대신, 어슐라교의 성직자들은 각지의 주점에 흩어져서 여러 지방의 정보를 교류하고 있었다.
  본래부터 하플링들은 다른 사람의 소문을 듣기 좋아하는 종족이었다. 그리고 하플링들의 성격을 대변하는 어슐라 교단은, 주점에서 흘러나오는 여러 가지 정보를 수집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결과, 어슐라 교단은 서부 대륙의 모든 주점을 연결하는 방대한 정보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다.
  도둑 길드가 모든 음모를 관리하는 존재들이라면, 어슐라 교단은 제국의 모든 정보를 들을 수 있는 잡소문의 프로페셔널들이 된 것이다.
  결국, 랫스베인은 무라이 선장의 부탁을 승낙하고 말았다. 여러 개의 주점을 관리하게 된다는 말은, 온갖 잡소문의 근거지인 ‘어슐라 교단’의 정보를 직접 관리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선다는 뜻이었다.
  비록 자신에게 들어온 정보를 유용하게 사용하는 법은 몰랐지만, 랫스베인은 여느 어슐라 교단의 성직자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길 좋아했다. 그가 이번 제의를 받아들인 이유는, 단지 그것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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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랫스베인은 며칠 째 ‘썬더 잼’ 골짜기를 헤메이고 있었다.
  다루시아 제국――11개의 제후국과 수많은 종족들을 통합한 자유 제국――은 마법사 학파와 귀족들에 의해 통치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랫스베인이 헤메고 있는 썬더 잼 계곡은, 제국 중부의 라카닌 왕국에 소속된 영토였다. 다만, 이 특수한 지형 때문에 라카닌 왕국은 이 계곡에서 자신들의 영유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랫스베인 역시 이곳에서 영유권을 행사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니까, 이만 칼은 거두고, 우리들끼리 친하게 지낸다면 어떨까?”

  랫스베인은 자신의 주변을 둘러싼 잡종오크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에게 창을 겨누고 있는 3마리의 오크들은, 그의 진지한 목소리를 농담처럼 받아들인 것 같았다.

  “쿠아 비치 아우?”

  랫스베인은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이전에 오크어를 배운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슐라 교단은 본래 하플링들이 만든 종교이고, 하플링들은 농사꾼인 주제에 다른 종족의 이야기에도 관심이 많은 종족이었다. 그래서 하플링들의 종교인 어슐라 교단 역시, 다양한 종족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 기본처럼 되어 있었다. 그것은 전 대륙의 정보를 취급하는 어슐라 교단의 성격에도 잘 맞는 일이었다.
  잠시 목청을 가다듬은 랫스베인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오크어로 툴툴거리는 목소리를 냈다.

  “아쿠아쿠, 빠야빠야.”

  오크들은 창을 내리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랫스베인이 오크어를 할 수 있는 것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내 그들은 화난 표정을 짓더니, 랫스베인의 목에 창을 더욱 가까이 들이댔다.
  랫스베인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아참참. 이건 욕이었지.”

  그는 오크들이 내민 창끝을 밀어내며 말했다.
  
  “이젠 질렸어. 자, 꼬마들아. 이쪽을 보거라.”

  랫스베인은 황동으로 된 성표를 끄집어냈다. 그 성표는, 지난달에 빤 것처럼 후줄근한 랫스베인의 셔츠 속에서 나왔다. 그런데, 그 성표에는 커다란 네모 상자 같은 것이 달려 있었다.

  “어슐라의 이름으로, 모두 실명하거라!”

  그의 외침과 함께, 랫스베인의 성표는 찰칵, 하는 소리를 내며 밝은 빛을 비추었다. 오크들은 그 강한 빛에 눈을 비비며 비명을 질렀다. 랫스베인은 오크들이 눈을 감싸며 고통스러워하는 동안, 그들이 떨어트린 창을 걷어차서 계곡 아래로 굴러 떨어지게 만들었다.
  그는 아직도 눈을 비비며 신음을 흘리고 있는 오크들을 보며 웃었다.

  “휴우. 발명가 길드에 들렀을 때, 이 ‘반짝이 기계’를 사두길 잘했군. 오크들을 기절시키는 데는 이런 깜짝 도구가 직빵이라니까.”

  자신의 성표에 유래를 알 수 없는 발명품을 장착한 성직자는, 껄껄 웃으며 계곡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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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카닌 왕국은 늪이 많은 나라였다.
  덧붙여서, 라카닌은 숲의 나라이고, 호수의 나라이고, 활의 나라이기도 했다. 이곳에는 제국의 어떤 나라도 흉내 낼 수 없을 정도로 강인한 군대가 있었다. 북방의 소국인 라카닌 왕국이 수 백 년 간 이 땅을 지켜 올 수 있었던 건, 그들의 왕국을 지키는 매우 강력한 병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특별한 라카닌 왕국의 병사들은, 일명 ‘라카닌 장궁대’라고 불렸다.
  라카닌 장궁대는 이 왕국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군인들이었다. 그들은 라카닌 왕국의 지형을 누구보다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또, 이곳에선 누구보다 강하게 싸울 수 있었다. 심지어는, 평야에서 기병들과 싸우더라도 패배하지 않는 정예 순찰대, 그들이 바로 ‘라카닌 장궁대’들이었다.
  이 민첩하고 강인한 병사들은, 라카닌 왕국의 이곳저곳에 순찰기지를 두고 있었다. 이것은 랫스베인이 들어간 썬더잼 계곡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잡종 오크들이 살고 있는 이 골짜기에도 라카닌 순찰대의 거점이 존재했다.

  “큰일을 치를 뻔 하셨구려, 성직자 양반.”

  푸른 가죽 튜닉에 녹색 케이프를 뒤집어쓴 중년 사내가 그를 반겼다. 이 남자는 썬더잼 지역의 레인져 대장이었다. 랫스베인은 그 이름 높은 라카닌 장궁대의 순찰대장을 처음으로 만나보게 되어 감격했다. 랫스베인은 순찰대장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 순찰대장의 이름은, ‘투라’였다.
  투라는 호수의 왕국인 라카닌에 하늘 찌를 듯한 충성심을 가진 군인이었다. 오크들에게 쫓겨서 곤혹을 치르던 랫스베인을 가장 먼저 반겨준 사람도 바로 ‘투라’였다. 그는 썬더 잼 계곡의 중턱에 요새를 짓고, 30여명의 부대원들과 함께 미개 오크족의 침입을 저지하는 작업을 해낼 정도로 용감했다.
  단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이 있다면, 그 순찰대장 ‘투라’는 ‘하프오크’ 출신의 군인이었다. 그러나 렛스베인은 종족 차별주의자가 아니었기에, 그 사실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대신, 랫스베인은 임무에 대한 질문을 했다.
  
  “투라 씨, 이 근방에 문제가 생겼다고 들었소만.”
  “과연! 당신이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파견된 성직자이셨군요?”

  랫스베인이 이 계곡에 들어온 것도, 이 순찰부대의 문제를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이곳의 순찰대장인 투라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투라는 랫스베인의 말을 듣자마자, 주변의 부하들에게 손짓을 하며 빠르게 일을 진행시켰다.

  “그럼, 술의 성직자님. 좀 있으면 부하가 술을 대접하러 올 겁니다. 실은 저도 하프오크 출신답게 술을 좋아하는 편이이거든요. 안으로 들어가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하도록 합시다.”

  랫스베인을 이곳에 파견한 ‘무라이 선장’은, 랫스베인과 투라가 서로 성격이 잘 맞을 거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랫스베인은 혼자서 그렇게 믿고, 무라이 선장에게 감사했다.
  지금 그는 자신의 임무를 어떻게 처리 하느냐 보단,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가 생긴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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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랫스베인은 겉보기엔 점잖은 학자처럼 보이는 사람이었다. 깨끗이 다듬은 수염, 책을 들고 있으면 어울릴 법한 얼굴, 귀부인들이 좋아할만한 잡다한 지식 등등.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그 추접한 버릇 때문에, 랫스베인은 결코 ‘성인’으로서 존경받을만한 성직자는 아니었다.

  “이봐요, 아가씨. 그러지 말고 나랑 한잔 같이 하자니까!”

  술에 취한 랫스베인은, 장궁대의 여성 대원에게 작업을 걸고 있었다.
  긍지 높은 라카닌 장궁대의 순찰대장인 투라가 그것을 좋게 볼 리는 만무했다. 랫스베인은 하프오크답게 둥글고 순진한 눈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랫스베인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래서, 투라 씨. 당신이 우리 어슐라 교단에 도움을 청하신 이유는 무엇이외까?”
  “흠흠. 일단 그것부터 설명해야겠군요.”

  투라는 여전히 랫스베인을 흘겨보는 눈빛을 거두지 않은 채로 말했다.

  “이곳까지 오시면서, 썬더 잼 계곡의 험난한 위용은 보셨으리라 믿습니다. 본래 이곳은 라카닌 왕국의 잡종 오크들이 숨어사는 위험지대입니다. 지금껏 우리 순찰 기지의 대원들은, 몇 대에 걸쳐 이곳의 잡종 오크들을 사냥하는 일에 주력해왔습니다. 그래서 저를 비롯한 이 캠프의 장궁대들은, 복잡하고 끈적거리는 썬더 잼의 모든 땅굴을 눈 감으면 훤히 보일 정도로 꿰뚫고 있죠.
  하지만, 근래에는 몇 군데에서 정찰이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벌써 몇 년째, 썬더 잼 중심부의 한 지역만은 오크들의 수비가 엄청나게 두터워져서, 우리 순찰대의 염탐꾼들도 그 동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알 수 없을 지경이 되어버렸죠.“
  “음, 투라 씨가 하신 말씀을, 제가 정리해봐도 될까요?”
  “그러시죠,”
  “그러니까, 몇 년 동안 한 지역에서 오크들이 큰 무리를 형성하고 있어서, 그곳을 격퇴할만한 전력이 부족해졌다, 이 말이군요?”

  하프오크 출신의 장궁대 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최근에 돌아온 순찰대원의 말에 따르면, 수백 마리나 되는 오크들이 우리가 있는 순찰 기지를 향해 진군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랫스베인은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보고를 들은 건 언제였죠?”  
  “7일 전입니다. 어슐라 교단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서신을 보낸 것도 그때였죠.”

  랫스베인이 무라이 선장으로부터, 이 사건의 의뢰를 받은 건 3일전 이었다. 투라가 말한 날짜에서, 이 지역과 랫스베인이 있던 화이트랜스 사이에 편지가 오갈 시간을 생각해보면, 이 하프오크 순찰대장의 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투라 씨.”
  “네?”
  “그런 일이 있다면, 제국의 치안청에 보고를 보내면 되잖습니까? 우리 어슐라 교단은 정보를 수집하는 일에는 뛰어나지만, 군대는 아닙니다. 저 같은 성직자가 한명 와봐야, 무수한 오크들을 물리칠 수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이것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사항이었다. 랫스베인은 교단의 명령으로 이곳에 오긴 했으나, 혼자서 수백 마리나 되는 오크를 상대로 이길 수는 없었다. 그는 이곳의 라카닌 장궁대원들이 어째서 자신을 불렀는지 알고 싶었다.
  그런데, 투라는 오히려 랫스베인의 의견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에요, 랫스베인 사제.”
  “예에?” 랫스베인은 투라의 반박에 놀랐다. “그럼, 제가 이곳에 온 것만으로도, 이 순찰 기지를 향해 진군하는 수백 마리의 오크들을 막을 만한 계책이 생긴다는 것입니까?”
  “믿기 어려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요.”

  그것은 랫스베인으로서는 믿기 어려운 말이었다.
  랫스베인은 그럭저럭 뛰어난 모험가이긴 했지만, 수백이나 되는 ‘군단’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는 ‘개인’이었다. 그런 자신이 이곳에 온 것만으로도, 수백 마리나 되는 오크들을 물리칠 수 있는 계획이 나온다면, 그것은 대체 어떤 악마가 생각해낼 수 있는 신의 지혜일 것인가?
  하프오크는 술잔에 술을 부었다. 그들이 마시고 있던 술은 근처의 우드엘프들이 담군 과실주였다. 하플링들이 만든 환상적인 술맛에 비교하면 그저 그렇지만, 랫스베인도 즐겁게 먹을 수 있는 정도의 술이었다.
  투라는 술을 목으로 넘긴 뒤에, 힘겹게 말했다.

  “랫스베인 사제. 우리 기지는 수백이나 되는 적들을 막아낼 힘이 없어요.”

  그는 방금 전에 랫스베인이 꺼냈던 말을 되풀이했다.
  확실히, ‘화이트랜스’ 같은 대도시에 비하면, 썬더 잼 계곡의 라카닌 순찰기지는 무척 작았다. 수백 마리의 오크가 상대라면, 이 순찰기지가 가진 방어력은 돌멩이 앞의 병조림만큼이나 나약한 것이었다. (이때, 병조림에 대한 것을 생각하다보니, 랫스베인은 자신의 근거지인 윈셔―남부 하플링들의 집단 거주지―에 남겨두고 온 병조림이 지금쯤 썩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깊은 근심에 빠져 들었다.)
  그 표정을 본 투라는, 랫스베인이 엄청난 수의 오크 떼 앞에서 절망한 사람의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걱정할 것 없어요. 분명히 이 기지는 약하지만, 아까 전에도 말했듯이 이곳에 당신이 온 것만으로도, 이 순찰 기지는 구원받을 수 있으니까요.”
  “음. 어떻게 하면 그런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듣고 싶군요, 투라 씨.”
  “별 것 아니에요.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랫스베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투라를 따라, 순찰 기지의 오두막에서 나왔다.
  그러는 동안, 랫스베인은 탁자 위에 있던 술병 하나를 배낭 속에 몰래 숨겼다. 한때 소매치기 경력도 있었던 랫스베인에게, 그것은 정말로 식은 죽을 먹는 것보다도 손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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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찰 기지의 지하에는 신기한 시설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곳은 주로 이 험난한 계곡의 생물들을 잡아다 가두어 놓는데 사용되는 ‘감옥’과 비슷한 시설이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곳은 ‘지하 감옥’이었다. 랫스베인은 투라를 따라 차가운 지하 감옥의 계단을 내려갔다.
  제국의 발명가들은, 인간이 땅을 파고 지하로 들어가면, 약 100제국 미터마다 섭씨 1도씩 온도가 상승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랫스베인은 어디선가 그런 말을 주워들은 적이 있었다. 그가 소속된 어슐라 교단은, 제국 전체의 소문을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듣고 수집하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그가 들어가고 있는 지하 감옥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추워지기만 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곳은 천연동굴을 다듬어 만든 감옥이었다. 인간들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둔 돌계단만이, 이곳에서 유일한 문명의 흔적이었다. 계단 옆에는 천장에 매달린 철창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안에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생물체들의 뼈가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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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분쯤 아래로 내려간 랫스베인은 이제 천연 동굴을 구경하는 것이 질릴 지경이었다. 그는 다시 따뜻한 지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30분, 40분, 1시간이 지나서도, 그는 그 지하 감옥에서 나올 수가 없었다.
  랫스베인은 지금 철창 속에 갇힌 채로 몸을 떨고 있었다.

  “이봐, 당신. 어슐라 교단의 성직자를 이런 곳에 가두어 둬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여긴 정말 춥군. 게다가, 술도 없고, 예쁜 여자도 없잖아!”

  하지만, 방금 전에 그를 감옥 안에 밀어놓고 문을 잠가버린 하프오크는, 열쇠를 던졌다 받았다하면서 코웃음을 칠뿐이었다.

  “랫스베인 사제. 당신은 이곳에서 하루만 더 머물러 줘야겠소.”
  “잠깐만! 이제 이 순찰기지에는 수백 마리의 오크들이 들이닥친다고 했잖아? 내가 있으면 그걸 물리칠 수 있다고 했으면서, 왜 나를 이런 지하 감옥에 가두어 두려는 거지?”

  랫스베인은 투라의 얼굴을 노려보며 말했다. 투라는 빙글빙글 웃었다. 그의 곁에는 5마리쯤 되는 못생긴 오크들이 웃음을 참고 있었다.
  투라는 열쇠를 흔들다가, 그것을 자신의 입 속에 넣었다. 그리고 꿀꺽 삼켜버렸다. 철창 밖으로 손을 내밀고 그것을 가로채려던 랫스베인은 경악했다. 투라는 멍청히 자신을 바라보는 랫스베인을 비웃으며 말했다.

  “수백 마리의 오크들? 아아, 그야 물론 이 순찰 기지로 향했지. 그것은 벌써 어제의 일이었소. 그리고 우리들은, 이곳에서 근무하던 라카닌 장궁대들을 모두 학살한 후에 잡아먹었소. 당신을 속이기 위해 최소한의 인원만을 남기고 말이오. 물론, 이곳에서 대장으로 일하고 있던 배신자 하프오크는 일곱 조각으로 잘라서 죽여버렸지.”

  랫스베인은 이제 더 이상 저항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양손을 철창 밖으로 내밀고, 머리도 철창에 바짝 붙인 채로, 마치 철창에 포박당한 죄인처럼 바깥을 바라보았다.

  “흥, 그렇군. 너는 이곳의 대장이 아니었군. 이곳에서 대장을 하고 있던 하프오크는 어디로 갔지?”
  “당신 옆에 있소.”
  “뭐?”
  “이미 뼈밖엔 남지 않았지만 말이오.”

  그가 갇혀 있던 감옥 옆에는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넝마 조각이 흩어져 있었다. 랫스베인은 그 넝마 조각 안에 우편물을 싸듯이 놓여 있는 뼈와 살가죽의 잔해를 발견했다.

  “그럼, 내일 아침까지 그 시체와 함께 잘 지내보시오.”

  10분이나 위로 올라가야 하는 계단을 거쳐, 투라는 다시 지상으로 올라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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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갤 유령닉 머루머루입니다.

몇 년 전에 써둔, 쥐잡이 명수 성직자 랫스베인(Rat'sbain)의 모험 이야기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할 일이 없길레, 몇 년 째 올릴 곳을 찾지 못해 하드 속에서 썩어가는 글을 한 토막을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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